아랍에미리트(UAE)가 230억달러(약 27조2000억원)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을 철회했다. 미국이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막기 위해 제시한 보안 요구 사항이 지나치게 까다롭다는 이유에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미국과 UAE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UAE가 미국에 무기 거래 계약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고 전했다. 이번 계약은 지난 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에 체결된 것으로 F-35 전투기와 공격용 MQ-9B 드론 구매 등이 포함됐다.

UAE 당국자는 “미국이 중국의 스파이 행위로부터 자국 첨단 무기를 지키기 위해 설정한 보안 요구가 UAE의 국가안보를 해칠 만큼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UAE의 통신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안보 우려를 제기해왔다. 올봄에는 UAE 수도 아부다비 항만에 중국이 군사용으로 의심되는 시설을 비밀리에 건설 중인 사실이 확인돼 미국과 UAE 간 마찰이 생기기도 했다. UAE는 부인했지만 해당 시설은 폐쇄됐다. 중국은 UAE의 최대 교역국이다.

UAE의 무기 구매 계획 철회가 15일 UAE 고위급 군사대표단의 방미 협상을 앞두고 미국과의 협상력 제고를 위한 전술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WSJ는 “미국 당국자들은 관련 내용을 담은 UAE의 서한이 비교적 하급자 명의로 돼 있는 만큼 협상 전술로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UAE 당국자는 “F-35 구매 협상은 재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UAE는 지난해 이스라엘과 국교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맺은 뒤 미국과의 관계도 개선되면서 대규모 무기 구매 계약까지 이뤄졌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협상에 진전이 없자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양측의 구체적인 요구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자국의 최신 기술을 제3국에 공유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UAE는 F-35 전투기의 인도 시기를 2027년 전으로 앞당기길 바라는 것으로 전해졌다.

맹진규 기자 mae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