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자의 태종 평전·지리학자가 쓴 김정호 가상 인터뷰집 출간
"이방원은 정치적 리얼리스트…김정호는 신제품 개발자였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료에 근거해서 하더라도 다분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명암과 공과가 공존하기 마련이고, 어느 쪽을 비중 있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도 달라진다.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과 조선 후기 지도 제작자 김정호는 오늘날에도 회자하는 유명한 인물이다.

최근 이방원의 생애를 다룬 TV 드라마가 시작됐고, 5년 전에는 김정호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가 개봉했다.

현대인에게도 익숙한 두 사람을 색다른 시각으로 조명한 책이 잇따라 출간됐다.

정치학자인 박홍규 고려대 교수가 집필한 이방원 평전 '태종처럼 승부하라'와 지리학을 연구하는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이 환생한 김정호가 인터뷰에 응한 상황을 가정하고 쓴 '조선 최고의 개발자 김정호'다.

박 교수는 태종 이방원에 대한 후대 판단이 부정과 긍정 중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한다.

왕권을 거머쥐기 위해 형제를 무참히 죽인 '권력의 화신'이라는 시각과 신생 왕조의 제도 확립에 기여한 '유교적 군주'라는 주장이 한데 어우러지지 않아 이방원이 지닌 양면성을 제대로 관찰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태종에 대한 평가가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세종을 기준으로 이뤄진 점도 문제라고 비판한다.

그는 "세종의 시대가 유교적 이상에 가까운 문화와 태평의 시대였다면, 태종의 시대는 이질적 전(前) 단계에 불과하다는 견해는 세종을 보는 관점으로 태종을 평가하는 방식이 초래하는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한다.

태종에게 드리워진 편견을 걷어내자고 제안하는 저자도 이방원이 정몽주와 정도전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개국공신을 과감히 축출한 냉혹한 승부사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태종이 집권 후반기에 이상적 유교 국가를 향한 초석을 놓았고,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조선이라는 국가의 '큰 그림'을 그린 주인공이 됐다고 짚는다.

또 태종이 전제적 권력을 추구했다면 사찰기관이나 첩보기구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실제로는 소장파 관료와 사대부가 참여할 수 있도록 자문·보좌 기구를 두고 6조 기능을 확대했다고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저자가 보기에 이방원은 '정치적 리얼리스트'였다.

현실주의자였다는 뜻이다.

이방원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과업을 실천하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

그는 "찬탈한 권력이 정치적 영광으로 끝을 맺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에서 태종은 성공한 정치가였다"며 "오늘날 정치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 태종은 한 줄기의 빛"이라고 평가한다.

"이방원은 정치적 리얼리스트…김정호는 신제품 개발자였다"
김정호에 대한 연구서를 이미 두 권이나 펴낸 이 연구관은 이번 책에서도 김정호에 얽힌 잘못된 정보를 지적하고, 그가 '신제품 개발자'였다는 점을 부각한다.

저자는 김정호가 전국을 한 차례도 답사하지 않았으며, 백두산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역설한다.

대동여지도를 들고 여행하면 무조건 헤맨다고도 주장한다.

이어 전체를 펼치면 높이가 6.6m에 이르는 대동여지도는 너무 커서 인기가 없는 상품이었고, 오히려 서울 지도인 '수선전도'와 중형 한국 지도인 '해좌전도'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고 설명한다.

그 근거로 수선전도는 나중에 인쇄본을 바탕으로 다시 목판을 만들어 찍었고, 해좌전도는 목판이 닳을 정도로 인쇄됐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저자는 김정호가 애국자나 신화적 인물이 아니라 지도 제작에 매진한 '제조업자'였다고 단정한다.

그는 김정호의 입을 빌려 "나는 그저 가족을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려고 노력한 평범한 가장이었다"며 "지도를 만든 목적은 판매였고,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이용하기 편리한 지도를 제작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또 수선전도를 보면 거리와 방향이 정확한 지도보다는 이용하기 편리한 지도를 우선시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김정호의 삶에 대한 왜곡이 너무 심하고 많은데, 왜곡 하나하나에 대해 풀어나가려면 대화체보다 좋은 형식은 없다고 생각했다"며 "근대에 대한 강박관념, 그것이 왜곡한 전통사회에 대한 오해가 이 책으로 풀리길 바란다"고 했다.

태종처럼 승부하라 = 푸른역사. 580쪽. 2만2천 원.
조선 최고의 개발자 김정호 = 덕주. 501쪽. 2만3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