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대 통신 기업 BT가 프랑스 통신 재벌에 팔릴 위기에 놓였다. 자국 주요 기업의 잇단 매각 소식에 영국 정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서는 모양새다.

14일(현지시간) CNBC,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프랑스 억만장자 패트릭 드라히(사진)가 영국 BT의 지분을 기습적으로 늘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영국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BT는 드라히가 소유한 통신기업인 알티스(Altice)가 BT의 지분을 12.1%에서 18%로 늘렸다고 이사회에 통보했다.

이날 런던증권거래소에서 BT 주가는 불확실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의 투매가 이어지면서 5% 가까이 폭락했다. 드라히는 "현재로선 BT에 대한 독점권을 장악할 의도는 없다"면서도 "제 3자가 나선다거나, BT 이사회가 승인한다면 바뀔 수 있다"고 밝혔다.

알티스는 이미 올해 6월 기습적으로 20억파운드(약 3조1300억원)를 들여 BT의 최대주주로 등극했다. 드라히는 네덜란드의 유로넥스트증권거래소 상장돼 있던 알티스가 계속 저평가되자 이를 비상장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영국에 알티스UK라는 새로운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FT는 "드라히는 최근 몇년 새 미국, 포르투갈 등에서 저평가된 통신 기업을 노골적, 기습적으로 인수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정부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보리슨 존슨 총리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서는 "영국 정부는 중요한 국가통신 인프라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떠한 행동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는 1월 시행 예정인 국가안전보장투자법을 거론했다.

해당 법안을 알티스의 BT 인수를 저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투자은행 제프리의 제리 델리스 애널리스트는 "알티스의 인수 의도가 확실한 데 반해, BT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은 지속적인 명확성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BT는 1846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의 공중 전신회사로 설립됐다. 국영기업으로 운영되다 1990년대 말 민영화된 BT는 영국 기업 역사상 상징적인 회사로 손꼽힌다. 2010년대 후반 이후 국가 네트워크 인프라를 개선하고 차세대 5G 인터넷망을 구축하겠다는 등의 청사진을 밝혔지만, 주가는 지난 5년 사이에 55% 가량 하락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알티스는 프랑스 통신 기업이다.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다. 설립 이후 유럽과 미국 등에서 다수의 케이블 회사, 모바일 기업 등을 인수하며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