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복 소비·리셀 문화에 명품 수요 급증
# "극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시기에도 한국에서는 소비자들이 화장지, 반려동물 사료 등을 사재기하지 않는다. 대신, 9500달러(약 1100만원)짜리 샤넬 가방 같은 물건을 사기 위해 새벽 5시부터 백화점 밖에서 줄을 서 기다리는 새로운 관습(habit)이 생겼다."명품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면서 백화점들이 수혜를 입었다. 올해 연매출 1조원을 넘긴 백화점 점포 수는 지난해 5곳에서 10곳으로 두 배로 늘어났다. 별도 집계를 하진 않지만 매출 1조 점포가 두 자릿수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보도에서 백화점 점포 문이 열리자마자 해외 명품 브랜드 제품을 사기 위해 달려가는 '오픈런' 풍경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의 올해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개장 31년 만이다. 이에 따라 연매출 1조원을 넘긴 '1조 클럽' 점포는 지난해 5곳에서 올해 10개로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들어 줄줄이 신규 1조 클럽 가입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역시 이달 8일 처음으로 1조 클럽에 가입했다. 1985년 개점 이래 36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롯데 부산본점 역시 연매출 1조원 달성 소식이 전해진 바 있다. 기존 1조 클럽 점포였던 신세계 강남점·센텀시티점, 롯데백화점 본점·잠실점, 현대백화점 판교점까지 모두 10곳이 올해 연매출 1조원을 달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명품 효과 덕을 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일례로 갤러리아명품관의 올해(11월 말 기준) 명품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뛰었다. 하이주얼리&워치 매출이 67% 치솟았고 샤넬 등 명품 잡화 매출도 49% 증가했다. 루이비통 남성 등 남성명품도 35%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 신장률을 끌어올렸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올해 하이주얼리&워치와 남성명품 매장 개편으로 일부 층은 2개월 이상 영업면적 50% 이상 영업이 중단됐지만 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며 "명품관의 평(3.3㎡)당 월 매출은 1000만원을 기록, 글로벌 백화점을 뛰어넘는 평 효율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해외 여행길에 막힌 데 따른 국내 시장에서의 '보복 소비'에 주요 명품 브랜드의 잇따른 가격 인상 등이 더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백화점들이 줄줄이 명품과 MZ(밀레니얼+Z)세대 취향에 맞춰 점포 개편을 한 점이 주효했다. 다수 점포가 명품 브랜드의 남성 특화 매장 등을 열며 보다 다변화된 타깃 마케팅을 벌였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의 경우 지난해 국내 최초 에르메스 복층 매장과 국내 최대 규모 롤렉스 매장을 열었다. 올해는 지하 2층과 4층을 '혁신'을 키워드로 MZ세대 고객 유치에 초점을 맞춰 리뉴얼했다. 지난 6월엔 기존 남성층(4층)을 남성들을 위한 '멘즈 럭셔리관’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그 결과 리뉴얼을 완료한 지하 2층과 4층의 경우 20대와 30대 고객의 올해(11월 말 기준) 매출이 각각 42%, 85%씩 뛰었다.
명품 브랜드가 가격을 잇따라 인상하고 있지만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샤테크(샤넬+재테크), 롤테크(롤렉스+재테크)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리셀(재판매) 문화가 확산한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리셀 시장에선 한정판 등 인기 모델의 경우 많게는 수천만원의 프리미엄(웃돈)이 붙는 것으로 전해졌다. 백화점 업계는 내년에도 명품에 초점을 맞춰 마케팅을 이어갈 전망이다. 유통 빅3는 백화점 부문 대표이사로 과거 명품 관련 이력이 돋보이는 인사로 새해를 맞는다.
롯데쇼핑은 신임 백화점 사업부 대표로 신세계 출신의 정준호 롯데GFR 대표를 선임했다. 신세계도 지난해 고문으로 물러났던 손영식 전 신세계디에프 대표에게 다시 백화점을 맡겼다. 현대백화점은 계열사 패션기업 한섬을 이끈 김형종 대표가 유임했다.
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일부 명품 브랜드 인기 모델은 대기를 걸어야 하는 상태다. 백화점들의 점포 리뉴얼(개편) 효과 등으로 내년에도 명품 중심의 매출 성장이 한층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