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대통령, 제조업 활성화한다며 저금리 정책 '외고집' 터키 경제가 리라화 가치 폭락과 물가 급등, 주가 하락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선 가운데 터키만 홀로 기준금리를 인하하며 '역주행'에 나선 탓이다.
기준금리 인하가 촉발한 자국 화폐 가치의 폭락이 물가 급등과 주가 폭락이라는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터키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 올해 들어 터키 리라화 가치 절반 이하로 떨어져
올해 초 터키 리라화는 1달러당 7.4리라에 거래됐다.
그러나 18일(현지시간) 낮 12시 기준 리라화는 1달러당 17리라 선에서 거래 중이다.
원화 대비로 1월 기준 1리라는 147.65원이었고 현재는 1리라가 72원이다.
1년 만에 리라화 가치가 절반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리라 가치 하락은 터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중앙은행은 지난 9월 이후 4달 연속 기준금리를 내렸다.
9월에 19%이던 기준금리는 14%로 5%포인트 내려갔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 외화 대비 자국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시중 통화량이 증가해 물가는 상승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물가 상승을 유발하자 금리를 올려 유동성 회수에 나선 세계 주요 은행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것이다.
◇ 물가 상승률 20% 넘겨…체감 물가 상승은 공식통계 이상
리라 가치가 폭락한 데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까지 인하에 유동성을 더 늘리면서 물가는 치솟는 중이다.
지난 3일 터키의 공식 통계 조사기관인 투르크스탯이 발표한 1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1.31%를 기록했다.
터키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0%를 넘어선 것은 3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제학자와 야권은 물가 상승률이 20%에 그쳤다는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오을루 대표는 투르크스탯 본부를 항의 방문하고 "투르크스탯이 통계를 조작했다"고 비판했다.
체감 물가 상승률은 정부 공식 통계를 뛰어넘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올해 초 마트에서 우유 1리터(L) 가격은 6.95리라였으나, 현재는 11.95리라에 달한다.
수입 완제품이거나 원료 대부분이 수입품인 제품은 가격 상승세가 더 가파르다.
6개월 전 24리라에 판매하던 수입 샴푸의 현재 가격은 60리라를 넘어섰다.
터키 정부는 지난 16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50% 인상한 월 4천250리라(약 33만 원)로 정했다.
이를 두고 실제 물가가 50% 이상 올랐다는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 하루에 주가 8.5% 폭락…외인 "완전한 항복" 평가
리라 가치 하락은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리라화의 가치가 떨어지면 리라 표시 자산의 가치 역시 하락하기 때문이다.
17일 오후 4시24분 이스탄불 증권거래소의 BIST 100지수가 전 거래일 종가 대비 7% 폭락하자 모든 유가증권과 파생상품 거래가 중단됐다.
오후 5시 24분에 거래가 재개됐으나 재개장 2분 만에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9.1%까지 하락했고, 결국 이날 종가는 8.5% 하락을 기록했다.
메들리 어드바이저스의 닉 스타드마일러 신흥시장 국장은 "오늘 터키 주식 시장의 완전한 항복은 현지 정서의 전환을 나타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터키인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빼는 것은 국내 자본 유출의 가속을 의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기준금리 인하 배경은 에르도안의 요구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요구 때문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는 공개적으로 중앙은행에 금리 인하를 요구해 왔으며, 이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2년 동안 세 차례 중앙은행 총재를 경질했다.
그는 금리 인하의 여파로 리라 가치가 폭락하는 동안에도 "금리 인하에 대해서는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며 "정부의 경제 정책을 믿어달라"고 당부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른바 '신 경제모델'을 내세워 금리 인하를 옹호하고 있다.
고금리는 해외 투기성 자본의 배만 불리지만, 금리를 낮추면 기업의 차입비용이 낮아져 제조업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저금리로 생산과 수출을 뒷받침할 것"이라며 "결국 소비자 물가는 낮아지고 통화가치도 향상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금리 인하의 결과는 기대한 선순환이 아닌 리라 폭락과 물가 인상, 주가 급락의 악순환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