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흰구름, 박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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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닷컴 더 라이피스트
흰구름
박종해
“울지 마라
너가 울면 내가 빨리 못간다.”
먼먼 길을 떠나시며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는 어디로 그렇게 서둘러 가신 것일까.
동산머리에 흰구름이 피어 오른다.
구름은 피어 하늘을 떠돌다가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태헌의 한역]
白雲(백운)
莫泣汝若泣(막읍여약읍)
吾不能速去(오불능속거)
將登遠路前(장등원로전)
母親向余語(모친향여어)
母親悤悤去何處(모친총총거하처)
小山頭上白雲浮(소산두상백운부)
浮雲遊回天空中(부운유회천공중)
余暫顧他跡忽無(여잠고타적홀무)
[주석]
* 白雲(백운) : 흰 구름.
莫泣(막읍) : 울지 마라! / 汝若泣(여약읍) : 네가 만약 울면.
吾(오) : 나. / 不能(불능) : ~을 할 수 없다. / 速去(속거) : 빨리 가다.
將(장) : 장차. 아직 미발(未發)의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시어이다. / 登遠路(등원로) : 먼 길에 오르다, 세상을 떠나다. / 前(전) : ~하기 전에.
母親(모친) : 어머니. / 向余(향여) : 나를 향해, 나에게. / 語(어) : 말하다.
悤悤(총총) : 다급하게, 바쁘게, 서둘러. / 去何處(거하처) : 어디로 가는가?
小山(소산) : 작은 산, 동산. / 頭上(두상) : 머리 위. / 浮(부) : 뜨다, 떠 있다. 원시의 “피어 오른다.”를 역자가 임의로 고쳐 한역한 표현이다.
浮雲(부운) : 뜬 구름. / 遊回(유회) : 떠돌아다니다, 떠돌다. / 天空中(천공중) : 하늘 가운데, 하늘에.
暫(잠) : 잠시. / 顧他(고타) : 다른 것을 돌아보다, 딴전을 피다, 한눈을 팔다. / 跡(적) : 자취, 종적.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忽(홀) : 문득, 갑자기. 이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무) : 없다, 없어지다. 원시의 마지막 구절을 역자가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한역의 직역]
흰 구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내가 빨리 갈 수 없다.”
장차 먼 길 오르시기 전에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는 서둘러 어디로 가신 걸까?
동산 머리 위에 흰 구름이 떴다.
뜬 구름이 하늘에서 떠돌더니
내 잠시 한눈파는 새 종적 문득 사라졌다.
[한역 노트]
시인처럼 부모님이 운명할 때 임종한 자식을 뜻하는 말인 ‘종신자식(終身子息)’은 이상하게도 출처나 유래가 확인되지 않는다. 어쩌면 민간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역자는 어려서부터 종신자식은 하늘이 낸다는 말과 함께, 예로부터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것을 매우 큰 효도로 여겼다는 얘기를 집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어왔다.
어느 마을 효자가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려고 같은 방에서 침식(寢食)까지 하며 병수발을 들었는데, 어느 날 잠깐 측간을 다녀오는 사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려 원통해 하며 한없이 통곡했다고 한 할아버지의 얘기를 귀를 쫑긋거리며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역자의 먼 친척 가운데 한 분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임종을 하고자 두어 달 휴직까지 하고서 고향으로 내려와 병수발을 드는 중에, 찾아온 친구가 있어 담벼락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담배 두어 대 태울 정도의 시간 동안 얘기하고 일어섰는데 그새 어른이 돌아가셨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런 일들 때문에 종신자식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생겨났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인데 슬퍼서 읽기 힘든 시를 왜 소개하느냐고 타박할 독자가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힘들지만 가야 할 길이 있듯, 슬프지만 해야 할 얘기도 있는 법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를 힘들거나 슬프다는 이유로 묻어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역자는 이 힘겨운 시기에도 아랑곳 않고 이 시를 소개하게 되었다. 역자가 언젠가 얘기했듯 기록된 것은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훗날 모두 역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시인의 가족사(家族史)의 한 장면으로 간주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역자는 이 시를 감상하면서 슬프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때가 되면 가야하는 것도 인생이고, 때가 되면 보내야 하는 것도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 시의 공간 설정은 연에 따라 다른데 1연과 2연은 병실로, 3연은 선영이 있는 시인의 고향이거나 추모공원 등의 장소로 추정된다. 이 시의 공간 설정에 대한 이해는,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하고 핵심 소재이기도 한 “흰 구름”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다.
이 시에서의 “흰 구름”은 한 마디로 시인의 어머니 영혼의 투영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영혼이 슬퍼하는 자식을 위하여 흰 구름으로 동산머리에 떠서 하늘을 서성이다가 자식이 잠시 다른 것도 돌아보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그리고 흔적도 없이 먼 곳으로 가셨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시인이 한눈팔았다는 것은 슬픔 속에서도 약간의 일상을 돌아보았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시인의 눈길이 계속하여 영혼의 투영체인 흰 구름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어머니의 영혼은 쉽사리 떠날 수가 없으셨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한눈판 것은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영혼을 보내드린 것이 된다.
이 시에서의 “흰 구름”은 달리 인간사가 덧없고 단촉한 것임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이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이라는 생성과 사멸의 원리는 어머니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남은 자식의 마음자리를 이토록 허허롭게 하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병실에서 울먹이며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고 있었을 시인에게 들려준 어머니의 말씀은 단호하고 비장하기까지 하여 깊은 울림을 준다. 다시는 못 올 길을 가는 어머니를 붙들고 싶어도 붙들 수 없는 자식의 마음과, 가야할 길을 알고 서둘러 가려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교차하는 그쯤에서 나왔을 이 “말씀”이 역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듯하다.
역자는 3연 9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 4구와 칠언 4구로 구성된 고시로 한역하였다. 오언구와 칠언구는 압운을 달리하였으며, 모두 짝수 구에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去(거)’·‘語(어)’, ‘浮(부)’·‘無(무)’가 된다.
2021. 12. 21.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박종해
“울지 마라
너가 울면 내가 빨리 못간다.”
먼먼 길을 떠나시며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는 어디로 그렇게 서둘러 가신 것일까.
동산머리에 흰구름이 피어 오른다.
구름은 피어 하늘을 떠돌다가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태헌의 한역]
白雲(백운)
莫泣汝若泣(막읍여약읍)
吾不能速去(오불능속거)
將登遠路前(장등원로전)
母親向余語(모친향여어)
母親悤悤去何處(모친총총거하처)
小山頭上白雲浮(소산두상백운부)
浮雲遊回天空中(부운유회천공중)
余暫顧他跡忽無(여잠고타적홀무)
[주석]
* 白雲(백운) : 흰 구름.
莫泣(막읍) : 울지 마라! / 汝若泣(여약읍) : 네가 만약 울면.
吾(오) : 나. / 不能(불능) : ~을 할 수 없다. / 速去(속거) : 빨리 가다.
將(장) : 장차. 아직 미발(未發)의 상황이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여 역자가 임의로 보탠 시어이다. / 登遠路(등원로) : 먼 길에 오르다, 세상을 떠나다. / 前(전) : ~하기 전에.
母親(모친) : 어머니. / 向余(향여) : 나를 향해, 나에게. / 語(어) : 말하다.
悤悤(총총) : 다급하게, 바쁘게, 서둘러. / 去何處(거하처) : 어디로 가는가?
小山(소산) : 작은 산, 동산. / 頭上(두상) : 머리 위. / 浮(부) : 뜨다, 떠 있다. 원시의 “피어 오른다.”를 역자가 임의로 고쳐 한역한 표현이다.
浮雲(부운) : 뜬 구름. / 遊回(유회) : 떠돌아다니다, 떠돌다. / 天空中(천공중) : 하늘 가운데, 하늘에.
暫(잠) : 잠시. / 顧他(고타) : 다른 것을 돌아보다, 딴전을 피다, 한눈을 팔다. / 跡(적) : 자취, 종적.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忽(홀) : 문득, 갑자기. 이 역시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무) : 없다, 없어지다. 원시의 마지막 구절을 역자가 함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한역의 직역]
흰 구름
“울지 마라! 네가 울면
내가 빨리 갈 수 없다.”
장차 먼 길 오르시기 전에
어머니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어머니는 서둘러 어디로 가신 걸까?
동산 머리 위에 흰 구름이 떴다.
뜬 구름이 하늘에서 떠돌더니
내 잠시 한눈파는 새 종적 문득 사라졌다.
[한역 노트]
시인처럼 부모님이 운명할 때 임종한 자식을 뜻하는 말인 ‘종신자식(終身子息)’은 이상하게도 출처나 유래가 확인되지 않는다. 어쩌면 민간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역자는 어려서부터 종신자식은 하늘이 낸다는 말과 함께, 예로부터 부모님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는 것을 매우 큰 효도로 여겼다는 얘기를 집안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어왔다.
어느 마을 효자가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려고 같은 방에서 침식(寢食)까지 하며 병수발을 들었는데, 어느 날 잠깐 측간을 다녀오는 사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버려 원통해 하며 한없이 통곡했다고 한 할아버지의 얘기를 귀를 쫑긋거리며 들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역자의 먼 친척 가운데 한 분에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임종을 하고자 두어 달 휴직까지 하고서 고향으로 내려와 병수발을 드는 중에, 찾아온 친구가 있어 담벼락에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담배 두어 대 태울 정도의 시간 동안 얘기하고 일어섰는데 그새 어른이 돌아가셨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런 일들 때문에 종신자식은 하늘이 낸다는 말이 생겨났을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로 힘든 시기인데 슬퍼서 읽기 힘든 시를 왜 소개하느냐고 타박할 독자가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힘들지만 가야 할 길이 있듯, 슬프지만 해야 할 얘기도 있는 법이다. 삶과 죽음에 관한 얘기를 힘들거나 슬프다는 이유로 묻어둘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리하여 역자는 이 힘겨운 시기에도 아랑곳 않고 이 시를 소개하게 되었다. 역자가 언젠가 얘기했듯 기록된 것은 그것이 기쁨이든 슬픔이든 훗날 모두 역사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시인의 가족사(家族史)의 한 장면으로 간주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역자는 이 시를 감상하면서 슬프지만 결코 슬프지 않은 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때가 되면 가야하는 것도 인생이고, 때가 되면 보내야 하는 것도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에서 언급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이 시의 공간 설정은 연에 따라 다른데 1연과 2연은 병실로, 3연은 선영이 있는 시인의 고향이거나 추모공원 등의 장소로 추정된다. 이 시의 공간 설정에 대한 이해는, 이 시의 제목이기도 하고 핵심 소재이기도 한 “흰 구름”에 대한 이해와 맞물려 있다.
이 시에서의 “흰 구름”은 한 마디로 시인의 어머니 영혼의 투영체라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영혼이 슬퍼하는 자식을 위하여 흰 구름으로 동산머리에 떠서 하늘을 서성이다가 자식이 잠시 다른 것도 돌아보는 것을 알고는 조용히, 그리고 흔적도 없이 먼 곳으로 가셨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시인이 한눈팔았다는 것은 슬픔 속에서도 약간의 일상을 돌아보았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시인의 눈길이 계속하여 영혼의 투영체인 흰 구름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어머니의 영혼은 쉽사리 떠날 수가 없으셨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이 한눈판 것은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영혼을 보내드린 것이 된다.
이 시에서의 “흰 구름”은 달리 인간사가 덧없고 단촉한 것임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이는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이라는 생성과 사멸의 원리는 어머니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남은 자식의 마음자리를 이토록 허허롭게 하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병실에서 울먹이며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고 있었을 시인에게 들려준 어머니의 말씀은 단호하고 비장하기까지 하여 깊은 울림을 준다. 다시는 못 올 길을 가는 어머니를 붙들고 싶어도 붙들 수 없는 자식의 마음과, 가야할 길을 알고 서둘러 가려고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교차하는 그쯤에서 나왔을 이 “말씀”이 역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를 감상하는 독자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할 듯하다.
역자는 3연 9행으로 이루어진 원시를 오언 4구와 칠언 4구로 구성된 고시로 한역하였다. 오언구와 칠언구는 압운을 달리하였으며, 모두 짝수 구에 압운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去(거)’·‘語(어)’, ‘浮(부)’·‘無(무)’가 된다.
2021.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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