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진정한 '원 삼성'의 조건
육군 병사들이 쓰는 용어 중에 ‘아저씨’란 말이 있다. 이등병이 자대 배치를 받으면 100명 안팎으로 구성된 중대에 속하게 된다. 같은 중대원끼린 선후임 관계가 철저하지만 옆 중대 소속에는 선임 대우를 안 한다. 같은 부대 마크를 달고 생활하지만 알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중대원을 부를 때 “저기요, 아저씨”라고 한다.

‘아저씨’를 새삼 떠올린 건 2019년부터 2년 넘게 삼성전자를 취재할 때다. 당시 삼성전자는 크게 스마트폰을 담당하는 IM(정보기술·모바일)부문과 TV·가전의 CE(소비자가전)부문, 반도체 중심 DS(디바이스솔루션)부문으로 나뉘어 있었다. 삼성전자의 각 부문 임직원을 보면 ‘같은 회사 직원’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저씨'처럼 대하는 삼성 직원들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납품하는 DS부문 시스템LSI사업부는 무선사업부(폰 담당)로부터 ‘을(乙)’도 아닌 ‘병(丙)’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무선사업부와 TV를 담당하는 VD사업부 간에는 최근 몇 년간 서비스(넷플릭스 같은 외부 콘텐츠 업체와의 협력사업)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알력 다툼이 벌어졌다. 올해 들어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무선사업부가 DS부문에 SOS를 치자 반도체 경영진이 “수원(본사가 수원 영통에 있는 무선사업부)에서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고 말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명함에 찍힌 로고만 같을 뿐 굳이 협력할 필요가 없는 ‘아저씨’ 관계인 것이다.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사로 꼽히는 애플은 다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출시 행사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어디가 어디를 흉내 냈는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비슷한 두 회사의 이벤트에도 다른 점이 하나 있다. 스마트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 ‘반도체’ 담당 임원의 출연 여부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마케팅 담당자가 휴대폰에 적용된 반도체 성능에 대해 무미건조하게 설명한다. 애플은 반도체 담당 부사장이 직접 나와 휴대폰에 들어간 칩에 대해 소개한다.

애플이 “경쟁 제품보다 CPU(중앙처리장치) 속도가 50% 더 빠르다” 같은 귀에 쏙쏙 박히는 멘트를 날릴 수 있는 것도 반도체 임원이 직접 나온 영향으로밖에 볼 수 없다.

'원팀' 문화 뿌리내린 애플

기자는 최근 애플의 반도체 개발을 총괄하는 팀 밀렛 애플 부사장을 인터뷰하며 ‘애플 실리콘(반도체)과 완제품 부서의 협업’에 대해 물어봤다. 밀렛 부사장은 “스마트폰 노트북 등 완제품의 기획 단계부터 반도체 엔지니어들이 참여해 최고 성능을 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한다”며 “혁신은 애플 반도체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애플 신제품의 모든 영역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원팀’을 강조한 것이다.

물론 삼성전자에도 사정이 있다. 조직 간 경쟁을 중시하는 기업 문화, 반도체와 완제품 간의 너무 다른 사업 성격 등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연말 조직 개편 이후 변화의 분위기가 감지된다. 부문이 달랐던 스마트폰과 TV, 가전사업을 ‘DX부문’으로 묶고 DX부문장인 한종희 부회장이 직접 ‘원 삼성’의 시너지를 강조하고 나섰다.

기왕 ‘원 삼성’을 시작했다면 앞으론 완제품과 반도체 간 벽도 허무는 게 어떨까. 마침 삼성전자는 내년 초 ‘갤럭시 S22’ 출시 행사를 앞두고 있다. 이때 DS부문 임직원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반도체를 직접 소개한다면 ‘원 삼성’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