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課稅)한다’는 조세의 기본원칙이다. 다만, 소득보다 폭넓은 개념으로 경제활동 과정에서 추가로 창출되는 ‘부가가치’ 기준으로 조세가 부과되기도 하는데, 소득이든 부가가치든 일정한 기간의 흐름으로 측정한 유량(流量·flow) 개념에 통상적으로는 과세가 이뤄진다. 이런 유량에 대비해서 특정한 시점에 측정되는 저량(貯量·stock) 개념을 경제학에서는 구분하는데, 마치 어떤 시간 동안에 상영되는 영화가 유량이라면 한 시점에 찍힌 사진은 저량과 유사하다.

대부분 세금은 유량에 부과되는데 그 이유는 세금 자체가 어느 특정 기간에 제공된 정부의 역할과 서비스에 대해 부과한다는 측면이 강하고, 저량에 대한 세금은 대부분 미실현 과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저량 과세가 재산세 형식의 세금이다. 재산은 특정 시점에 얼마만큼의 부를 소유하는지 나타내는 것으로, 유량보다는 저량 개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재산세는 실제로 저량 과세라기보다 주거 서비스 소비에 과세하는 일종의 소비세에 가깝다. 소비세는 재화의 소비를 기준으로 세금 부담 능력을 측정해 조세를 부과하는 형식이다. 즉, 자신이 보유한 주택에 거주한다는 것을 해석하면, 세를 놓은 대신에 그만큼 주거 서비스를 소비한다고 볼 수 있어 해당 서비스의 소비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자율 연 2%인 환경에서 10억원짜리 주택에 거주한다는 것은 연간 2000만원의 이자수익을 포기하고 이에 해당하는 주거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다. 이런 주거 서비스 소비에 대해 부가가치세율 기준으로 10% 소비세 세금을 매긴다면 실제로는 연간 200만원 정도의 세액을 내는 것으로, 이 정도 세율이라면 납세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이 경우 주택가격 기준으로 하면 0.2% 정도의 실효세율을 뜻한다.

물론, 금리 및 경제 여건에 따라 구체적인 실효세율의 합리적인 수준으로 볼 수 있는 범위는 달라질 수 있지만, 재산세만 놓고 보면 시가표준액에 공정시장가격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을 계산하고, 여기에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세금을 산출하는 기존 재산세 체계에서 산출된 세액은 이러한 합리적 수준의 실효세율 추정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또 하나의 저량 과세로 종합부동산세가 더해지면서 문제가 달라졌는데, 기존 재산세에 대한 이중과세 이슈뿐만 아니라 미실현 저량 과세의 문제도 더해졌다. 즉, 실제로 종합부동산세는 부과 대상에 기존의 재산세와 비교하기 어려운 높은 실효세율로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주거 서비스에 대한 소비세 성격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렇다면 미실현 저량 과세로 보는 것이 타당한데, 이 경우 사실상 재산권을 정부가 훼손하는 것에 가깝다. 즉, 특정 시점에서 재산이 어느 이상인 경제 주체를 대상으로 재산을 정부가 압류하는 것과 유사하다. 따라서 재산 압류 성격의 세금은 저항도 심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당 세금의 의도가 보유한 재산을 강제로 매각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면 이는 더욱 그렇다. 그거야말로 노골적인 재산 압류 및 재산권 훼손 시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득의 현금흐름이 약하고 자녀로부터 지원받지 못하는 은퇴한 노년계층으로서는 기존 재산을 매각하지 않고 버티기 어렵다는 뜻인데 이는 재산의 강제 몰수와 다름없다.

물론 종합부동산세를 부담해야 하는 대상이 적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다수가 아닌 소수의 재산이라는 이유로 재산권 훼손이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다수냐 소수냐를 떠나 국가가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시장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시장에 중대한 시그널을 주고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왜곡해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급격한 증세를 통한 재산권 훼손은 자본의 시장 이탈이나 사회적 약자로의 비용 전가 등 연쇄적인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과거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과도한 재산세에 대해 위헌 판결을 하면서 재산보유에 대한 과세는 그 처분권이 납세자의 수중에 유지되는 범위에서 허용돼야 하고 정기적인 저량 과세는 그 한계가 엄격히 준수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근의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과도하고 급격한 증세는 재산권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측면을 새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