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한국전력은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연료 가격이 최근 급격히 올랐으니 전기요금을 인상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료 가격 변동분을 3개월마다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화됐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전기요금 동결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한전의 실적 악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홍남기,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걷어찼다

연료비 조정단가 ‘0원’ 유지

한전은 내년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현재 ㎾h당 0원에서 3원으로 올리는 안을 정부에 제출했지만, 정부가 유보 결정을 내려 내년 1~3월에도 연료비 조정단가가 0원으로 유지된다고 20일 발표했다. 연료비 조정단가는 전기요금을 구성하는 여러 항목 가운데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해 분기마다 조정하는 금액이다.

내년도 1분기에 적용되는 연료비 조정단가는 지난 9~11월 평균 연료비(실적연료비)가 2019년 12월부터 작년 11월까지의 평균 연료비(기준연료비)와 비교해 얼마나 올랐는지를 따져 결정한다. 한전에 따르면 올 9~11월 실적연료비는 ㎏당 467.12원으로 기준연료비인 289.07원에 비해 61.6% 상승했다.

이처럼 연료 가격이 급등하면서 연료비 조정단가를 ㎾h당 29.1원 높일 요인이 발생했지만 분기별 최대 인상폭이 3원으로 제한되는 만큼 정부에 3원 인상을 요청했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전기요금이 3원 오르면 월평균 350㎾h의 전기를 사용하는 4인 가구는 한 달에 1050원의 추가 요금 부담이 발생한다.

기재부 “물가 안정이 우선순위”

정부는 한전의 연료비 조정단가 인상 요구를 거절하면서 “코로나19 장기화와 높은 물가상승률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생활 안정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그동안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을 동결하겠다는 뜻을 수차례 밝혀 왔다. 이달 2일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서민 생활물가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전기요금 동결을 암시하기도 했다.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3.7% 올라 9년11개월 만에 가장 큰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통계가 발표된 당일이었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 역시 지난 17일 ‘2022년 경제정책방향’ 브리핑에서 “겨울철을 앞두고 서민 물가 측면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부담이 굉장히 크다”며 “정책 우선순위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물가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전기요금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서 정부 스스로 만든 연료비 연동제는 사실상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요금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올 1월 처음 도입됐다.

연료비 연동제가 지켜지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정부는 작년 낮은 수준의 연료 가격을 기준으로 올 1분기 연료비 조정단가를 3원 인하했지만, 정작 연료비가 오른 2분기와 3분기엔 연속으로 동결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도 서민생활 안정이 이유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전기요금이 정책 목표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한 게 연료비 연동제인데, 정부의 반복적인 개입으로 인해 제도의 기능이 무력화되고 취지도 퇴색됐다”고 지적했다.

연료 가격이 오르는데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 한전의 경영 상황은 크게 악화할 전망이다. 한전은 올 들어 3분기까지 1조1298억원의 영업손실(연결 기준)을 냈다. 연료비 증가분을 제때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메리츠증권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한전의 영업손실이 올해 4조6600억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