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산재 승인율 높은 질병 걸리면 산재로 추정"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승인율이 높은 근골격계질환은 아예 산재로 추정하겠다는 내용의 개정 고시를 행정예고했다. 산재 승인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등 큰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내용인데도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산재분야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용부는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특정 직업군 근로자에게 근골격계 질환이 발병할 경우 산재로 추정하는 내용의 고시 개정안을 20일 예고했다. 고시 개정안은 오는 27일까지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뒤 확정할 계획이다.

◆산재 '신속 승인' 위해 추정 규정 도입한 고용부

고용부가 고시 개정에 나선 것은 산재 승인 기간을 단축해 근로자의 편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노동계에서는 산재 승인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근로자가 생계나 치료에 있어서 불이익을 겪고 있다며 산재 승인 기간 단축 요구가 거센 상황이다.

산재 추정 대상은 2020년 한해 통계를 기준으로 산재 승인율이 80% 이상인 근골격계질병이다. 예를 들어 조리사나 객실청소부로 1년 이상 일하다 손목터널증후군이 생기면 산재로 추정된다. 또 1년 이상 건물청소원으로 일하다 일명 '테니스 엘보우'라고 불리는 상과염이 와도 산재로 추정된다. 5년 이상 자동차 부품 조립 업무를 한 근로자에게 허리디스크가 발생해도 산재로 추정된다.

원칙적으로 산재는 근로자가 주장하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에서 산재 여부를 판단한다. 하지만 고시안에 따르면 일부 근골격계질환은 일단 산재로 ‘추정’된 상태로 질판위에 올라 간다. 이론적으로는 산재가 아니라고 증명해 산재 불승인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추정’된 경우 현장 자료 조사 절차가 대폭 생략돼 반증이 어려워진다. 또 산재 승인 시간을 단축하라는 압박에 쫓기는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불승인 결정을 내리는 등 '악역'을 자처할 가능성이 낮다는 게 경영계의 분석이다. 산재 승인율이 치솟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추정 규정, 근거 빈약한데도 고용부는 '강행'

근로자의 불편을 줄인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 방식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재 인정에 있어서 추정 규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고시안은 기준을 설정함에 있어 과학적 근거도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특히 2020년 한해 통계를 기준으로 만들어 대표성 문제도 지적된다.

일례로 손목드퀘르벵병(건초염)은 지난해 산재로 인정된 사례가 5건에 불과한데도 추정 규정이 적용되는 질병으로 선정됐다. 고시 개정 과정에 관여한 한 전문가는 "추정 규정을 적용하는 근속기간도 어떤 질병은 1년이고 어떤 질병은 5년인데 이를 구분하는 과학적 기준은 없는 것 같다"며 "승인율 80% 기준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했다.

또 근골격계 질환은 퇴행성 질환이라 노령 근로자들이 노화로 자연스럽게 걸리는 경우가 많지만 산재로 추정된다. 또 근로기간 동안 관리직으로 일해도 해당 업무 종사자라면 추정 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는게 경영계의 지적이다.

이처럼 산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인데도, 고용부가 별다른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고 개정을 강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나 적용대상 업종 관계자를 부르는 등의 설명회나 공청회도 한 번 개최하지 않았다. 예고기간도 일반 행정예고 기간(20일)에 비해 현저히 짧은 7일이다.

경영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고용부 고시 개정안은 같은 직종이라 할지라도 사업장마다 작업량과 노출수준 등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사업장 자체노력에 의한 작업환경 개선효과도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여서 심각한 산재판정 왜곡과 이로 인한 집단 산재신청 등 현장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