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친노조·反노동이 '친노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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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노동자 12%에 불과한
거대 노조원들에게 휘둘리는
'노동·일자리 억압' 친노조 정책
노동자 88% 봉변에 눈감는 게
'노동자 편'에 서는 것인가
이학영 논설고문
거대 노조원들에게 휘둘리는
'노동·일자리 억압' 친노조 정책
노동자 88% 봉변에 눈감는 게
'노동자 편'에 서는 것인가
이학영 논설고문
문재인 정부 슬로건 가운데 가장 많이 논란의 도마에 오른 게 ‘일자리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실업률(2.6%)이 8년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는 등의 통계를 들어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고 주장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 봐도 정반대 실상이 드러난다. 늘어났다는 일자리 대부분이 세금으로 급조한 저임(低賃)의 몇 개월짜리 노인용 공공 아르바이트이고, 젊은 구직자들이 원하는 정규 일자리는 크게 줄어든 사실까지 분식할 방법은 없다.
코로나 사태 등 ‘외부환경 탓’이 단골 대응메뉴지만 상황이 비슷한 외국들과 비교해보면 그 역시 궁색하다. 대표적인 게 청년 일자리다. 지난해 한국의 청년(15~29세) 고용률(42.2%)은 같은 시장경제국가인 주요 5개국(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의 평균(56.8%)보다 턱없이 낮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아예 구직을 단념한 청년이 5년 전보다 18% 넘게 늘어났고, 청년 체감실업률이 25.1%로 4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상태다.
정부가 아무리 분칠과 강변을 하더라도 일자리, 특히 청년들의 취업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80일도 남지 않은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최우선 의제로 올려놔야 할 긴박한 과제다. 그런데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응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상대 후보와 가족들의 신상 문제를 물고 늘어지기에 바쁠 뿐, 화급한 국정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뒷전에 밀어놓고 있다.
더 실망스러운 건 문재인 정부를 ‘일자리 정부가 아니라 일자리 파괴 정부’라고 공격해온 제1야당의 행태다. 정부와 여당이 매년 수십조원의 혈세를 일자리 예산으로 퍼부어놓고도 되레 일자리를 파괴했다면 왜 그랬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제대로 밝힌 게 없다. 멀쩡한 일자리와 그 원천(源泉)인 산업을 망가뜨린 대표적 악수(惡手)로 꼽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어설픈 대응이 단적인 방증이다. 노동 당사자들의 처지를 감안하지 않은 일방적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조치가 어떻게 일자리 생태계를 왜곡하고 파괴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이들 정책을 주도한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거주 아파트 주민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 인건비 부담이 늘어났다”며 경비원들을 해고했던 사건에 모든 문제가 함축돼 있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지역·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그래야 노동자와 일자리를 최대한 지켜줄 수 있어서다.
모든 사업장에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돈을 받는 공기업·금융회사·대기업 임직원과 달리 급여 수준이 높지 않은 중소기업 종사자에겐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만큼의 수입 감소로 인한 타격이 크다. 가족의 생계를 간신히 유지해온 사람들 상당수에게 ‘노동 보호’를 내건 주 52시간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기업에도 조업시간 감소로 심각한 충격을 안겼다. 경영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는 존폐의 문제로 번졌다. 중소기업단체들이 틈날 때마다 52시간제 개선을 읍소하는 배경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꿈쩍 않는 이유는 뻔하다. 이 정책으로 재미를 보는 거대 노동조합들에 얹혀 있어서다. 공기업과 대기업 등 넉넉한 급여와 안락한 근무환경이 보장된 직장 종사자로 구성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거대 노조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호봉이 상승하는 반사이익을 누린다. 법정 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막강한 교섭력을 앞세워 기존 급여 이상을 받아낸다.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내세워 억지 쟁의행위를 벌여도 ‘노동 존중’을 명분 삼은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그런 노조에 질린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 대신 해외로 눈길을 돌리면서 좋은 일자리가 증발돼간다.
이런 거대 노조 구성원은 전체 노동자의 12%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의 철밥통 놀음에 88%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온갖 덤터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정치인은 보수 성향이든 진보 성향이든 노동자 편일 수밖에 없다. 표가 거기(노동자)에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親)노동’ 탈을 쓴 채 노동을 옥죄고 있는 정부·여당의 ‘친노조’ 정책에 숟가락을 얻는 게 그가 말하는 ‘노동자 편’이라면 큰 문제다.
코로나 사태 등 ‘외부환경 탓’이 단골 대응메뉴지만 상황이 비슷한 외국들과 비교해보면 그 역시 궁색하다. 대표적인 게 청년 일자리다. 지난해 한국의 청년(15~29세) 고용률(42.2%)은 같은 시장경제국가인 주요 5개국(미국·일본·영국·독일·프랑스)의 평균(56.8%)보다 턱없이 낮았다.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아예 구직을 단념한 청년이 5년 전보다 18% 넘게 늘어났고, 청년 체감실업률이 25.1%로 4명 중 1명이 사실상 실업상태다.
정부가 아무리 분칠과 강변을 하더라도 일자리, 특히 청년들의 취업 문제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80일도 남지 않은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최우선 의제로 올려놔야 할 긴박한 과제다. 그런데 주요 대선 후보들의 대응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상대 후보와 가족들의 신상 문제를 물고 늘어지기에 바쁠 뿐, 화급한 국정과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뒷전에 밀어놓고 있다.
더 실망스러운 건 문재인 정부를 ‘일자리 정부가 아니라 일자리 파괴 정부’라고 공격해온 제1야당의 행태다. 정부와 여당이 매년 수십조원의 혈세를 일자리 예산으로 퍼부어놓고도 되레 일자리를 파괴했다면 왜 그랬는지, 어떤 대안이 있는지를 제대로 밝힌 게 없다. 멀쩡한 일자리와 그 원천(源泉)인 산업을 망가뜨린 대표적 악수(惡手)로 꼽히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한 어설픈 대응이 단적인 방증이다. 노동 당사자들의 처지를 감안하지 않은 일방적인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조치가 어떻게 일자리 생태계를 왜곡하고 파괴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이들 정책을 주도한 장하성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의 거주 아파트 주민들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비원 인건비 부담이 늘어났다”며 경비원들을 해고했던 사건에 모든 문제가 함축돼 있다.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지역·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그래야 노동자와 일자리를 최대한 지켜줄 수 있어서다.
모든 사업장에 주 52시간 이상 일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근로시간 단축 제도도 마찬가지다. 충분한 돈을 받는 공기업·금융회사·대기업 임직원과 달리 급여 수준이 높지 않은 중소기업 종사자에겐 근무시간이 줄어드는 만큼의 수입 감소로 인한 타격이 크다. 가족의 생계를 간신히 유지해온 사람들 상당수에게 ‘노동 보호’를 내건 주 52시간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기업에도 조업시간 감소로 심각한 충격을 안겼다. 경영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는 존폐의 문제로 번졌다. 중소기업단체들이 틈날 때마다 52시간제 개선을 읍소하는 배경이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이 꿈쩍 않는 이유는 뻔하다. 이 정책으로 재미를 보는 거대 노동조합들에 얹혀 있어서다. 공기업과 대기업 등 넉넉한 급여와 안락한 근무환경이 보장된 직장 종사자로 구성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등 거대 노조는 최저임금이 오르는 만큼 호봉이 상승하는 반사이익을 누린다. 법정 근로시간이 줄어들어도 막강한 교섭력을 앞세워 기존 급여 이상을 받아낸다.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내세워 억지 쟁의행위를 벌여도 ‘노동 존중’을 명분 삼은 정부의 보호를 받는다. 그런 노조에 질린 대기업들이 국내 투자 대신 해외로 눈길을 돌리면서 좋은 일자리가 증발돼간다.
이런 거대 노조 구성원은 전체 노동자의 12% 남짓에 불과하다. 이들의 철밥통 놀음에 88%의 힘없는 노동자들이 온갖 덤터기를 쓰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주 한 토론회에서 “정치인은 보수 성향이든 진보 성향이든 노동자 편일 수밖에 없다. 표가 거기(노동자)에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친(親)노동’ 탈을 쓴 채 노동을 옥죄고 있는 정부·여당의 ‘친노조’ 정책에 숟가락을 얻는 게 그가 말하는 ‘노동자 편’이라면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