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득하기 어려운 결정 유감…전원회의 위상과 부합하지 않아"
과징금·시정명령 취소 처분 소송으로 법정싸움 이어갈 듯
최태원 "당혹·억울" 적극 소명에도 위법성 결론…SK, 반발
SK㈜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2일 'SK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사건과 관련, 최태원 그룹 회장과 SK㈜의 행위에 위법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 반발했다.

SK㈜는 이날 입장문에서 "그동안 SK실트론 사건에 대해 충실하게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제재 결정이 내려진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최 회장이 실트론 주식 29.4%를 취득한 것에 대해 SK㈜가 공정거래법 제23조 2항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SK㈜와 최 회장에게 8억원씩 총 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SK㈜는 "지난 15일 전원회의 당시 SK㈜가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는 충분한 지분을 확보한 상태에서 실트론 잔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지 않은 것은 '사업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 등이 이번 결정 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또 "잔여 지분 매각을 위한 공개경쟁입찰은 해외 기업까지 참여한 가운데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했다고 밝힌 참고인 진술과 관련 증빙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SK㈜는 아울러 "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확인된 사실관계와 법리판단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기존 심사보고서에 있는 주장을 거의 그대로 반복한 것으로 이는 공정위 전원회의의 위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결서를 받는 대로 세부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 12시간 자리 지킨 최태원…"돈 벌 기회, 딴 게 없나", "어이없다"

SK그룹 내부에서도 지난 15일 전원회의 심판정에 최 회장이 직접 출석해 자신과 회사의 행위 및 판단 배경을 조목조목 소명했지만, 결국 위법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오자 매우 억울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 총수로는 이례적으로 심판정에 선 최 회장은 SK실트론 주식을 매입할 당시 본인의 판단과 정황 등을 비교적 꾸밈없이 털어놓았다.

SK측 변호인들 뒤편에 앉은 최 회장은 심의가 진행된 오전 10시께부터 오후 9시 40분께까지 12시간 가까이 자리를 지켰다.

공정위 심사관과 변호인들이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이자 발언자를 유심히 쳐다보거나 발언 내용을 메모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공정위 심사관이 '최태원은 본인이 이사인데도 이사회 의결을 받지 않고 직접 회사 기회를 무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답답한 듯 발언 기회를 얻어 직접 소명에 나섰다.

"제가 겪었던 일을 그냥 쭉 얘기를 드리겠다"며 말문을 연 그는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손을 휘저어가며 5분간 입장을 밝혔다.

최 회장은 SK㈜가 실트론 지분 29.4% 인수에 참여하지 않기로 확정했고, 그 때문에 조대식 SK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자신에게 지분 인수를 제안했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너무 당연한 게 회사가 살 수 있었으면 그냥 회사가 사면 되지 않느냐"며 "왜 조대식이 저한테 와서 갑자기 이걸 제가 사는 게 좋겠다고 얘기를 (했겠느냐). 저 돈 벌어주려고 얘기를 했다(는거냐). 솔직히 돈 벌 수 있는 기회가 이거 말고 딴 게 없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사회 절차도 진행하려 했지만 '할 필요가 없다'는 법률 조언 등에 따라 강행하지 못했다며 "(공정위가) 그 얘기를 뒤집어서 얘기하니까 제가 너무 조금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최 회장은 심의가 끝나기 직전 최후진술 때도 적극적으로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실트론 지분을 인수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힘든 수형의 경험을 겪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위 국정농단 사건에 관여됐는지에 대해서 오랜 시간 특검하고 검찰에도 수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저 스스로 아주 조심하던 때"라고 전했다.

이어 "실트론 지분 인수가 그룹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 나름 개인적인 리스크가 있지만 감안하고 추진했는데 오히려 회사 이익을 가로채려는 행위로 평가되는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당혹스럽고 좀 억울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최 회장은 "제가 SK주식회사에 갖고 있는 주식이나 재산은 실트론에 갖고 있는 주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당히 큰 액수"라며 "돈을 벌기 위해서 SK주식회사에 해를 끼친다는 일은 저 개인으로도 할 수 없는 얘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최 회장은 취재진이 퇴장한 후 심의가 비공개로 진행될 때도 실트론 지분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던 내밀한 사정에 대해 소상히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SK, 고법에 소송 제기 전망…"이미 소명된 것까지 부당 위법 결론"

SK그룹 내부에서는 이날 오전 내내 안타깝고 황당하다는 분위기 속에서 대응 방안을 고민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SK 측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정위의 과징금 및 시정명령에 불복하고 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관측된다.

공정위 전원회의의 과징금과 시정명령 결정은 1심 재판과 같은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SK가 제재에 불복하면 고등법원에 과징금·시정명령 취소 처분 소송을 내고 법정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아울러 SK 측은 공정위가 이날 내놓은 결론에서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반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관계자는 "지난 15일 전원회의에서 공정위 심사관과 SK 측 변호인 사이의 공방을 통해 논란이 이미 해소된 부분까지도 위법성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 부분들이 있다"며 "반박은 이런 부분들에 집중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최 회장 본인도 직접 이번 공정위 결정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 회장은 이날 오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언론과의 송년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검찰 고발 조치 없이 시정명령과 과징금 제재만 결정한 점, 과징금 규모가 SK그룹 정도의 대기업으로서는 매우 크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최 회장의 이례적 전원회의 직접 참석 및 적극적인 소명이 효과를 본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애초 공정위가 SK 측에 보낸 심사보고서(검찰의 공소장 격)에는 SK㈜와 최 회장에 대한 검찰 고발 조치까지 포함돼 있었으나, 전원회의를 거쳐 이 부분이 빠진 것만으로 SK로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고발 조치가 제재에 포함됐다면 검찰이 공정위의 조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SK㈜와 최 회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게 되기 때문에 부담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