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100조' 쩐의 전쟁 '포퓰리즘의 향연'…정작 국정철학·비전 안보여
李, 재난지원금 던졌다 '철회'…부동산 입장변화로 당정청 갈등
尹, 52시간제 입장 번복 거듭…추경 편성 당내 엇박자도

눈 앞의 표만 좇는 여야 대선후보의 포퓰리즘 행보가 가뜩이나 네거티브전으로 혼탁한 대선판을 더욱 멍들게 하고 있다.

'표퓰리즘'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파급력이 큰 이슈를 충분한 검토도 없이 여론에 편승해 내지르듯 꺼내거나 반대로 순식간에 주워담는 일이 계속되면서 여기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이 느끼는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득표에 도움이 되느냐'가 공약의 최우선 잣대가 되면서 이번 대선은 정작 후보들의 국정철학이나 향후 국가운영 비전은 드러나지 않는, 유권자 입장에서는 '갑갑한 대선'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국민 불편 해소를 명분으로 기존의 정책적 입장을 손쉽게 뒤집는 등 일관성이 없는 태도, 당정 갈등을 비롯한 내부 엇박자의 잦은 노출 등으로 정치권 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까지 하락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비호감대선] ②표만 되면 손바닥 뒤집듯…공약 내지르기에 국민만 혼란
당장 여야 후보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코로나19 손실보상 방안 역시 '인기영합주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서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50조원 규모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같은 당 김종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은 손실보상 규모로 100조원을 언급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역시 임시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을 처리해 당장 100조원을 지원해야 한다고 밝히며 이번 대선은 역대급 '쩐의 전쟁'이 벌어지는 형국이 됐다.

양측 모두 재원 조달방안은 모두 마련돼 있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정말 현실성 있는 방안인지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청와대와 정부 등 '곳간'을 책임지는 쪽에서는 현실화하기 쉽지 않은 공약이라는 신중론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재원을 마련하더라도 결국 '나라 빚'을 늘려 상당부분을 채울 수밖에 없음에도 선심쓰듯 공약을 내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여야 후보 모두 굵직한 정책 공약을 손바닥 뒤집 듯 수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국민들의 신뢰를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먼저 이 후보는 숙성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꺼냈다가 정부의 반대에 부딪히거나 여론이 악화할 조짐을 보이면 한발 빼는 식의 패턴을 노출했고, 이 과정에서 당정청 갈등이 노출되며 혼란을 키우기도 했다.

당장 본선 행보 시작과 동시에 꺼낸 음식점 총량제 발언 등이 비판에 직면하자 "공약이 아니라 아이디어"라며 물러섰다.

이어 지난 10월 29일 전격적으로 제기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추진'도 논란이 됐다.

정부는 물론 당과도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불쑥 '전국민 지원' 카드를 꺼내면서 '대장동 정국' 돌파용 카드가 아니냐는 시선까지 고개를 들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부겸 국무총리까지 재정 여력이 없다고 난색을 표시했으나 이 후보가 드라이브를 걸자 당 지도부도 국정조사까지 언급하는 등 당정 갈등 국면으로 흘렀다.

그러나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 속에 이 후보는 20일만인 11월 18일 이 제안을 전격 철회했다.

최근 민감한 이슈인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파워게임 등의 고차 방정식이 얽히면서 한층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12일 돌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를 1년간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물 잠김 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일시적 방책이라고 했지만, 정부의 정책 기조와 어긋나는 데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철폐하겠다는 이 후보 자신의 평소 발언과도 배치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부와 청와대의 반대 속에 당정청 갈등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자, 이 후보는 "선거가 끝난 후에 할 수 있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이 후보는 앞서 공약 중 하나인 국토보유세에 대해서도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한다"고 언급, 핵심 정책 브랜드인 기본소득 공약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다.

국토보유세 신설을 주장했던 이 후보가 집값 상승으로 내년 보유세 폭등이 우려되자 지난 18일 전격적으로 "재산세나 건강보험료는 올해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에 주문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불거졌다.

당정은 곧바로 내년 보유세 산정시 올해 공시가 적용 등의 재산세 동결 방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보유세 강화·거래세 완화'라는 정부의 부동산 기조를 바꾼 사실상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나아가 야당에서는 '매표', '몇달짜리 선거용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 후보의 '치고 빠지기'가 계속되자 "캐치프레이즈가 '이재명은 합니다'가 아니라 '이재명은 바꿉니다' 아니냐"는 자조 섞인 비판이 당 일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비호감대선] ②표만 되면 손바닥 뒤집듯…공약 내지르기에 국민만 혼란
윤 후보는 당이 그간 추진해온 정책 방향과 자주 엇박자를 냈다.

특히 노동·여성 이슈 등 의제에 전향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외연 확장을 시도하다가 당심과 충돌해 혼란을 낳은 사례가 잦다.

포퓰리즘과의 구분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후보는 노동계 현안인 공공기관 노동이사제와 타임오프제 등에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찬성 입장을 밝혔으나, 당내에서는 재계와의 마찰이 우려되고 보수 노선과도 거리가 있다는 반발이 나왔다.

윤 후보 직속의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으로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영입한 데 대해서도 당의 정체성과 거리가 있다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당내 인사가 적지 않았다.

당시 하태경 의원은 SNS에서 "거의 모든 주장이 우리 당 입장과 배치된다"며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는 말도 있지만 곤혹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홍준표 의원은 "잡탕밥"이라며 비판했다.

이 인선은 이준석 대표의 선대위 직책 사퇴 등 최근 폭발한 내홍 사태의 한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코로나19 손실보상과 관련해서 노출한 당과의 '내부 혼선'도 유권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후보 선출 직후 윤 후보가 '50조원 손실보상'을 공개 언급하자,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당과 논의된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재정건전성 중시 노선을 고수하면서 현 정부의 실정을 부각하겠다는 전략을 짜 두고 있던 당 지도부와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후 추경 편성 문제를 두고도 선대위 구성 초반 '추경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윤 후보와, '대선 후보의 추경 언급은 적절치 않다'는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사이에 온도차를 노출했다.

반발 여론 속에 말을 바꾼 사례도 있다.

윤 후보는 주 52시간제를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하다가 비판 속에 번복을 거듭했다.

정치참여 선언 직후인 지난 7월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가 논란이 일자 "근로자들을 120시간 일 시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다"며 자기결정권을 부여하자는 취지였다고 수습했다.

그러나 대선후보 선출 이후인 지난달 30일 청주 소재 중소기업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저 시급제나 주52시간제도 중소기업 운영에 비현실적이란 말씀을 들었다"고 언급하면서 다시 노동관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윤 후보는 결국 지난 14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미 정해져서 강행되는 근로 조건을 후퇴하기는 불가능하다"며 속도 조절에 나섰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