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뒤따르지 않으려면…"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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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족집게 이코노미스트가 한국에 건네는 조언
시라카와 크레디트스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일본이 지난 30년간 배운 것은 재정확장·통화완화로
아무리 돈 풀어도 물가는 영원히 오르지 않는다는 것"
시라카와 크레디트스위스 수석 이코노미스트 인터뷰
"일본이 지난 30년간 배운 것은 재정확장·통화완화로
아무리 돈 풀어도 물가는 영원히 오르지 않는다는 것"
"일본이 지난 30년 동안 배운 것은 재정확장과 통화완화 정책을 통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성장에 대한 기대 없이는 물가가 영원히 오르지 않고, 정부만 비대해진다는 사실이다."
시라카와 히로미치 크레디트스위스재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뒤따르지 않으려면 큰 정부를 막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1983년부터 16년간 일본은행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20년 넘게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금융회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본 경제를 분석해왔다. 2015년에는 일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이코노미스트에 선정됐다.
한국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지만 일본의 경제상황과 정부 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은 한국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이 30년 전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질 때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조언을 한국에 건네자면.
"정부 관계자와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온갖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써서 아무리 돈을 뿌려도 물가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 공통적인 결론이다. 일본은 재정확장 정책으로 막대한 자금을 뿌려도 봤고,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으로 중앙은행이 대규모 국채를 매입하는 등 통화량도 무제한으로 늘려봤다. 하지만 물가는 오르지 않았다." ▷무제한으로 돈을 풀었는데 왜 물가가 오르지 않았나
"왜냐하면 기업과 국민은 앞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기대를 해야 돈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야 물가가 오르고, 투자가 늘어나 다시 소득도 늘어난다. 성장에 대한 기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않는 한 아무리 돈을 써도 물가는 영원히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배웠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나
"지금은 국민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개선할 지를 논의할 때다. 저출산·고령화가 진전되는 일본은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경쟁상대국에 역전당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일본은 이미 '넘버1'이 아니고 신흥국에 따라잡히고 있다'고 인식한다. 거리의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면 '일본은 이제 틀렸다고 봅니다'라는 사람이 압도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부(마이너스)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돈을 쓰지 않고, 돈을 쓰지 않으니 기대도 오르지 않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현금을 드립니다'라고 해도 그 현금으로 미래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
"미래의 국가기반이 될 산업이 무엇인지 선정하고, 이를 위해 인재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 등 성장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성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엄격한 고용규제를 바꿔야 한다. 밝은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한 재정확장, 금융완화로 디플레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노령화와 인구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령화와 인구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을 높이는 아이디어가 있나
"미국처럼 이민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종의 정책실험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연간 3000만명으로 늘린 후 일본인은 어떻게 반응할까, 일본 사회가 견딜 수 있을까를 지켜보고 이민을 받아들일 지를 검토하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흐지부지 됐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극적으로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이지만 구조전환은 사회적인 압력과 마찰을 동반하므로 어려운 문제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이 디플레에서 완전히 탈출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치와 지도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 같다.
"다양한 경제분석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재정·통화정책을 강화할 수록 결국 정부가 비대하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커지면 규제가 늘어나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국가방위 등으로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대신 교육 개혁 등을 통해 민간의 활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한국경제에 대한 견해는.
"확실히 한국은 일본과 닮은 점이 있다. 시차가 있지만 한국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재정상의 문제 등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한국은 정책적으로 정부를 너무 팽창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민간의 활력을 어떻게 불러일으키느냐에 주력해야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내세우는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 주도로 재정을 투입해서 성장전략을 펼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본다. 기업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개인은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민간 부문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을 포함해서 사회적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기시다 내각은 지난달 26일 사상 최대 규모인 55조7000억엔(약 579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막대한 현금지원 정책에 비해 성장전략의 범위와 양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정부가 민간에 돈을 뿌리기만 한다고 성장하는게 아니다. 이번 경제대책은 중소기업과 외식업 종사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의 비중이 높다. 성장 전략이라기보다 경제안정화 정책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지급할 게 아니라 디지털 개혁과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감세정책 등이 필요하다." ▷일본은 G7중 생산성이 가장 낮은 나라다. 기시다 정부는 일본의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임금인상을 선택했는데.
"임금을 올리면 생산성도 올라간다는 건데 그런 논리는 없다. 생산성을 올려서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도 따라 오르는 것이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고용시장이다. 직업 안정성이 지나치게 강해 과잉고용상태가 됐다. 근로자가 100명인 회사의 경우 80명만으로도 충분하다. 해외 투자가들의 조언대로 고용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20명을 줄이면 생산성은 20% 올라가고, 근로자 1인당 급여도 오를 것이다."
▷남은 20%는 어떡하나
"남은 20%는 산업구조를 바꾸고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해 의료나 정보기술(IT) 등 성장하는 업종, 사람이 부족한 업종으로 인력을 전환시켜야 한다. 인력과잉 업종에서 인력부족 업종으로 인력이 전환되면 인력과잉 업종은 임금과 생산성이 올라간다. 인력부족 업종은 일손이 부족해 성장이 멈추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이 가장 우선시 할 일은 고용규제의 완화인데 현재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올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260%를 넘을 전망이다. 이렇게 부채비율이 높은데 일본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은 정부가 빚을 내 민간에 현금으로 지급하면 민간은 지급받은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국민과 기업이 저축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씩을 지급했지만 3만엔만 쓰고 7만엔은 저축했다. 소비한 3만엔도 국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니 희한하게도 일본은 정부의 부채만큼 민간의 저축이 늘고 있다. 저축이 많으니 재정파탄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이 일본의 재정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금리도 쉽게 오르지 않는 이유다." ▷일본이 기축통화 보유국이라는 점도 막대한 국가부채를 견디는 이유인가.
"엔화의 발행량이 많고, 엔화를 일정 수준 확보해 두려는 유럽 및 아시아 중앙은행이 있기 때문인 면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 정말 위기가 찾아와서 엔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주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일본 투자를 중단하는 해외 투자가가 나올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도 통화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일본 경제의 약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본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국가부채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보니 연간 예산의 70%가 사회보장 등 고정비로 나간다. 이러면 정부의 성장전략을 위한 예산이 부족해 지지 않나.
"그렇다. 재정의 경직화라고 표현한다. 일본의 인구구조상 사회보장비용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현명하게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할 여유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사회보장비용이 팽창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성장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런 논의는 중단돼 있다."
▷일본은행 출신으로서 현재 일본의 경제상황에 대한 일본은행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은행이 일본 정부의 정책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지원했다. 정부의 국채발행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국채를 매입했고, 주식(ETF)까지 사들였다.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정부의 비대화만 조장하고 정당화했다.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를 지금처럼 대량으로 매입해 주지 않았다면 금리가 올랐을 수 있고, 금리가 올랐다면 일본 정부가 부채 부담을 의식해 좀 더 성실하게 국채 발행 규모를 재고했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 절제(디서플린)가 없어지게 만든 것은 일본은행의 책임이다."
▷GDP 예측 전문가로서 올해와 내년 일본 GDP 증가율을 어떻게 예상하나. (지난 10월 일본은행은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3.0~3.6%, 내년은 2.7~3.0%로 예상했다.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예상치는 4.0%였다.)
"올해와 내년 모두 실질 국내총생산이 2.0%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1%도 안되는 일본의 잠재성장률에 비해 높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세계 경제가 '코로나 쇼크'로부터 회복하는데 따른 효과다. 일본 경제가 올해와 내년 2%씩 성장한다면 2023년 2분기 정도에나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가 수습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전망인가
"완전히 수습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과 같이 사망률이 낮게 유지되고 제5차 유행과 같은 폭발적인 감염 확대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예상치다."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으로서는 유일하게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는 형식으로 주식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효과가 있나.
"시장의 활력을 잃게 해놓고 효과는 내지 못했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의 가격기능을 느슨하게 만든다. 시장기능이 약해지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주식시장 트레이더들은 일본은행 때문에 주가가 종종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지적들을 한다. 주가가 떨어질 시점에도 일본은행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시장의 기능에 따른 것이다.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지지 않으면 반대로 오를 때 제대로 오르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일본은행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에 올 3월 이후에는 ETF 구매량을 줄이고 있다. ETF 매입으로 주가가 올랐느냐도 의문시된다. 이미 30조엔이 넘는 ETF를 매입했지만 주가상승 효과는 거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최악인 한일관계와 달리 한일 경제협력은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국의 경제협력 강화가 한일관계의 개선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무역 등 경제관계가 깊어질 수록 국가관계도 개선되는 면이 크고, 국가 관계가 정치·외교으로 개선되면 경제관계도 더 깊어진다. 두 나라의 정치·외교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양국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못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일 관계개선을 위해) 민간 경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도 있다. 지금은 톱다운 방식(하향식) 관계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니 양국의 정치지도자가 상황을 바꿔나가길 기대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시라카와 히로미치 크레디트스위스재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1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뒤따르지 않으려면 큰 정부를 막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1983년부터 16년간 일본은행 이코노미스트로 일했고, 20년 넘게 크레디트스위스 등 글로벌 금융회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본 경제를 분석해왔다. 2015년에는 일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이코노미스트에 선정됐다.
한국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했지만 일본의 경제상황과 정부 정책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은 한국의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이 30년 전 일본이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질 때와 비슷하다고들 한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조언을 한국에 건네자면.
"정부 관계자와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지만 온갖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써서 아무리 돈을 뿌려도 물가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는 것이 공통적인 결론이다. 일본은 재정확장 정책으로 막대한 자금을 뿌려도 봤고,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으로 중앙은행이 대규모 국채를 매입하는 등 통화량도 무제한으로 늘려봤다. 하지만 물가는 오르지 않았다." ▷무제한으로 돈을 풀었는데 왜 물가가 오르지 않았나
"왜냐하면 기업과 국민은 앞으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기대를 해야 돈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야 물가가 오르고, 투자가 늘어나 다시 소득도 늘어난다. 성장에 대한 기대를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않는 한 아무리 돈을 써도 물가는 영원히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일본은 지난 30년 동안 배웠다."
▷그렇다면 일본 정부는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나
"지금은 국민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어떻게 개선할 지를 논의할 때다. 저출산·고령화가 진전되는 일본은 한국을 포함한 다수의 경쟁상대국에 역전당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일본은 이미 '넘버1'이 아니고 신흥국에 따라잡히고 있다'고 인식한다. 거리의 사람들을 잡고 물어보면 '일본은 이제 틀렸다고 봅니다'라는 사람이 압도적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순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는 '부(마이너스)의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돈을 쓰지 않고, 돈을 쓰지 않으니 기대도 오르지 않는 악순환을 끊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아무리 '현금을 드립니다'라고 해도 그 현금으로 미래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전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접근이 필요한가
"미래의 국가기반이 될 산업이 무엇인지 선정하고, 이를 위해 인재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 등 성장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성장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 엄격한 고용규제를 바꿔야 한다. 밝은 미래를 보여주지 않는 한 재정확장, 금융완화로 디플레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노령화와 인구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을 높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령화와 인구감소를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을 높이는 아이디어가 있나
"미국처럼 이민을 받는 것도 방법이다. 일본은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종의 정책실험을 했다. 외국인 관광객을 연간 3000만명으로 늘린 후 일본인은 어떻게 반응할까, 일본 사회가 견딜 수 있을까를 지켜보고 이민을 받아들일 지를 검토하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결론이 나오기도 전에 흐지부지 됐다.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극적으로 산업구조를 바꾸는 것이지만 구조전환은 사회적인 압력과 마찰을 동반하므로 어려운 문제다. 이런 점에서도 일본이 디플레에서 완전히 탈출하기는 어렵다."
▷결국 정치와 지도자의 중요성이 커지는 것 같다.
"다양한 경제분석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재정·통화정책을 강화할 수록 결국 정부가 비대하진다는 것이다. 정부가 커지면 규제가 늘어나기 때문에 좋은 일이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국가방위 등으로 최소화하는 것이 좋다. 대신 교육 개혁 등을 통해 민간의 활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한국경제에 대한 견해는.
"확실히 한국은 일본과 닮은 점이 있다. 시차가 있지만 한국도 인구 고령화로 인한 재정상의 문제 등이 일어나고 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한국은 정책적으로 정부를 너무 팽창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면 나중에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 민간의 활력을 어떻게 불러일으키느냐에 주력해야 한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내세우는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부 주도로 재정을 투입해서 성장전략을 펼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본다. 기업이 미래를 위해 투자하고 개인은 성장의 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민간 부문을 활성화해야 한다. 정부는 민간이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 등을 포함해서 사회적 펀더멘털(기초체력)을 강화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기시다 내각은 지난달 26일 사상 최대 규모인 55조7000억엔(약 579조원) 규모의 '코로나19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막대한 현금지원 정책에 비해 성장전략의 범위와 양은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정부가 민간에 돈을 뿌리기만 한다고 성장하는게 아니다. 이번 경제대책은 중소기업과 외식업 종사자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의 비중이 높다. 성장 전략이라기보다 경제안정화 정책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단순히 돈을 지급할 게 아니라 디지털 개혁과 신재생에너지 투자 등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감세정책 등이 필요하다." ▷일본은 G7중 생산성이 가장 낮은 나라다. 기시다 정부는 일본의 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으로 임금인상을 선택했는데.
"임금을 올리면 생산성도 올라간다는 건데 그런 논리는 없다. 생산성을 올려서 경제가 성장하면 임금도 따라 오르는 것이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고용시장이다. 직업 안정성이 지나치게 강해 과잉고용상태가 됐다. 근로자가 100명인 회사의 경우 80명만으로도 충분하다. 해외 투자가들의 조언대로 고용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20명을 줄이면 생산성은 20% 올라가고, 근로자 1인당 급여도 오를 것이다."
▷남은 20%는 어떡하나
"남은 20%는 산업구조를 바꾸고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해 의료나 정보기술(IT) 등 성장하는 업종, 사람이 부족한 업종으로 인력을 전환시켜야 한다. 인력과잉 업종에서 인력부족 업종으로 인력이 전환되면 인력과잉 업종은 임금과 생산성이 올라간다. 인력부족 업종은 일손이 부족해 성장이 멈추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일본이 가장 우선시 할 일은 고용규제의 완화인데 현재 정책은 반대로 가고 있다."
▷올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는 260%를 넘을 전망이다. 이렇게 부채비율이 높은데 일본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은 정부가 빚을 내 민간에 현금으로 지급하면 민간은 지급받은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국민과 기업이 저축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에도 전 국민에게 1인당 10만엔씩을 지급했지만 3만엔만 쓰고 7만엔은 저축했다. 소비한 3만엔도 국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가니 희한하게도 일본은 정부의 부채만큼 민간의 저축이 늘고 있다. 저축이 많으니 재정파탄은 일어나지 않는다. 시장이 일본의 재정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고, 금리도 쉽게 오르지 않는 이유다." ▷일본이 기축통화 보유국이라는 점도 막대한 국가부채를 견디는 이유인가.
"엔화의 발행량이 많고, 엔화를 일정 수준 확보해 두려는 유럽 및 아시아 중앙은행이 있기 때문인 면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 정말 위기가 찾아와서 엔화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주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본에 대한 평가가 달라져 일본 투자를 중단하는 해외 투자가가 나올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도 통화가치가 낮아진다는 것은 일본 경제의 약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본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국가부채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보니 연간 예산의 70%가 사회보장 등 고정비로 나간다. 이러면 정부의 성장전략을 위한 예산이 부족해 지지 않나.
"그렇다. 재정의 경직화라고 표현한다. 일본의 인구구조상 사회보장비용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현명하게 필요한 곳에 예산을 투입할 여유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사회보장비용이 팽창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성장을 위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런 논의는 중단돼 있다."
▷일본은행 출신으로서 현재 일본의 경제상황에 대한 일본은행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본은행이 일본 정부의 정책을 지나칠 정도로 많이 지원했다. 정부의 국채발행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국채를 매입했고, 주식(ETF)까지 사들였다.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다. 정부의 비대화만 조장하고 정당화했다. 일본은행이 일본 국채를 지금처럼 대량으로 매입해 주지 않았다면 금리가 올랐을 수 있고, 금리가 올랐다면 일본 정부가 부채 부담을 의식해 좀 더 성실하게 국채 발행 규모를 재고했을 수 있다. 정부 정책에 절제(디서플린)가 없어지게 만든 것은 일본은행의 책임이다."
▷GDP 예측 전문가로서 올해와 내년 일본 GDP 증가율을 어떻게 예상하나. (지난 10월 일본은행은 올해 실질 경제성장률을 3.0~3.6%, 내년은 2.7~3.0%로 예상했다. 지난 1월 일본 정부의 예상치는 4.0%였다.)
"올해와 내년 모두 실질 국내총생산이 2.0%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1%도 안되는 일본의 잠재성장률에 비해 높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세계 경제가 '코로나 쇼크'로부터 회복하는데 따른 효과다. 일본 경제가 올해와 내년 2%씩 성장한다면 2023년 2분기 정도에나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본다." ▷코로나19가 수습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 전망인가
"완전히 수습되지는 않겠지만 지금과 같이 사망률이 낮게 유지되고 제5차 유행과 같은 폭발적인 감염 확대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예상치다."
▷일본은행은 주요국 중앙은행으로서는 유일하게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하는 형식으로 주식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효과가 있나.
"시장의 활력을 잃게 해놓고 효과는 내지 못했다.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의 가격기능을 느슨하게 만든다. 시장기능이 약해지면 부작용이 발생한다. 주식시장 트레이더들은 일본은행 때문에 주가가 종종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지적들을 한다. 주가가 떨어질 시점에도 일본은행 때문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가가 떨어지는 것은 시장의 기능에 따른 것이다. 떨어져야 할 때 떨어지지 않으면 반대로 오를 때 제대로 오르지 않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일본은행도 이같은 문제를 인식하기 때문에 올 3월 이후에는 ETF 구매량을 줄이고 있다. ETF 매입으로 주가가 올랐느냐도 의문시된다. 이미 30조엔이 넘는 ETF를 매입했지만 주가상승 효과는 거의 없다는 시각이 많다."
▷최악인 한일관계와 달리 한일 경제협력은 깊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국의 경제협력 강화가 한일관계의 개선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무역 등 경제관계가 깊어질 수록 국가관계도 개선되는 면이 크고, 국가 관계가 정치·외교으로 개선되면 경제관계도 더 깊어진다. 두 나라의 정치·외교 관계가 좋지 못하다는 것은 양국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못보고 있다는 의미다. (한일 관계개선을 위해) 민간 경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도 있다. 지금은 톱다운 방식(하향식) 관계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니 양국의 정치지도자가 상황을 바꿔나가길 기대한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