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속에서 국내 위스키 시장은 대폭 축소됐다. 2011년의 4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유는 회식 등 단체 술자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국내 위스키의 90%는 유흥시장에서 소비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뿐만 아니라 김영란법도 위스키 시장 축소를 가속화한 요인으로 꼽힌다. 그런데 위스키 시장이 최근 살아나고 있다. 맛과 향 등 위스키의 본질을 즐기는 혼술, 홈술족이 늘었기 때문이다.

위스키 가운데서도 싱글 몰트 위스키가 큰 폭으로 성장했다. 가격이 비교적 합리적인 미국 버번위스키 등이 많이 팔린다. 맥아가 주원료인 스카치위스키와 달리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로 발효 후 증류한 ‘옥수수 위스키’다. 메이커스마크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옥수수 위스키를 버번위스키라고 부르기 시작했을까.

버번(bourbon)위스키의 스펠링을 보면 그 어원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 절대왕정을 이끈 루이 14세 가문인 ‘부르봉(Bourbon)’이 어원이다. 부르봉 왕조는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을 도왔다.

부르봉 왕조가 독립전쟁을 도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18세기 당시 식민지 경쟁을 벌였던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 곳곳에서 싸웠다. 미국 독립전쟁 이전인 1756년엔 인도와 캐나다의 퀘벡을 놓고 싸웠는데 모두 영국이 이겼다. 독립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은 변변한 무기 하나 없었다. 영국이 미국에 공업시설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늘 하나라도 다 영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국에 연패해 하루빨리 영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던 프랑스는 미국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무기와 물자, 군인들을 보냈다. 프랑스와 동맹이었던 스페인, 네덜란드도 미국을 지원했다. 결국 영국은 1783년 파리조약을 통해 미국의 독립을 인정했다.

미국 정부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1785년 토머스 제퍼슨의 제안을 받아 버지니아 서부의 광대한 지역을 부르봉이라고 이름 짓는다. 버번위스키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켄터키 지역을 중심으로 옥수수 작물을 심는 사람에게 1.6㎢의 땅을 줬다. 대규모 옥수수 농장이 생기면서 위스키의 주재료는 호밀에서 옥수수로 슬슬 바뀌어갔다. 이 위스키는 오하이오강과 미시시피강을 따라 버번카운티를 거쳐 남부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팔려나갔다.

당시만 해도 루이지애나주는 프랑스 식민지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규모의 땅을 미국에 팔아버렸다. 이후 미국은 본격적인 서부 개척을 시작했다.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 캘리포니아, 오리건 지역도 빼앗았다. 미국의 독립을 도왔던 부르봉 왕조는 이후 몰락했고, 나폴레옹 역시 넬슨 제독에게 패배했다. 반면 미국은 세계 최대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