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에는 쉬움이 어려움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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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CMO Insight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 스티커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 스티커 메시지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한국광고학회 제24대 회장)
내가 겪은 오래 전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이십여 년 전, 처음으로 학술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투고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심사 결과를 기다렸더니, 심사위원 세 명 모두가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세 명 모두의 대체적인 평가 소견은 이랬다. 연구 방법과 결과의 해석은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글쓰기의 기본이 안 됐다는 것.
한때 소설가를 꿈꿨고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사람한테 글쓰기의 기본도 안 됐다고 하니, 좀 어이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품의 특성을 소비자들에게 어떻게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며 카피를 써 왔으니, 쉬운 표현이 논문에도 반영된 듯 했다.
한 마디로 학술 논문을 너무 쉽게 이해되는 문장으로 써서 투고했던 셈이다. 논문 초안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모두 없애고 다시 투고했더니 ‘대폭 수정 후 재심사’ 판정이 내려졌다.
조금 더 어려운 문장으로 고치고 관념어를 일부러 집어넣은 수정본을 다시 투고했더니 ‘부분 수정 후 게재’가 나왔다. 그것을 또다시 고쳐 ‘무수정 게재’를 받기까지 꼬박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논문 투의 어려운 글쓰기 스타일을 억지로 배우고 익히려고 고군분투했었다.
그 후 지금까지 10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왜 논문은 쉬운 문장으로 쓰면 안 되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논문 이외의 글도 쉽게 써야 하는데 너무 어려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어디 글뿐이랴.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꼭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자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 광고를 보며 쉽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아우디 A4 올로드 광고 ‘모든 길’ 편(2017)에서는 자동차의 가치를 누구나 알기 쉽게 알렸다. 광고 지면을 크게 가로지르는 헤드라인은 이렇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만, 올로드는 어디든 통할 수 있습니다(All roads lead to Rome, but an Allroad can lead everywhere).”
중학교 이상 졸업한 사람치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분은 아마도 없으리라. 광고 창작자들은 말장난 같은 언어유희를 재치 있게 구사한 셈이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길을 닦으며 시작됐고 길을 확장하며 대제국 로마가 완성됐다.
이런 사정에 주목했던 17세기 프랑스의 우화작가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광고에서는 아우디의 올로드(Allroad) 모델을 알리며 브랜드 이름을 살짝 비틀었다. 올로드를 ‘모든 길(All roads)’로 표현하며 자동차의 가치를 누구나 알기 쉽게 알렸다. 페덱스 광고 ‘이튿날 배송’ 편(2018)에서는 독일과 미국의 아침 인사를 섞어 다음날에 배송된다는 국제 특송의 혜택을 쉽게 알렸다.
광고 지면을 중앙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헤드라인은 이렇다. “구텐 모닝(Guten Morning).” 얼핏 보면 국적 불명의 말이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보면 헤드라인의 뜻이 쉽게 다가온다.
지면의 아래쪽에는 “밤새 배송(Overnight delivery)”이라는 카피를 써서, 헤드라인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나라 택배회사에서 ‘익일(翌日)’ 배송이란 표현을 쓰는데, 요꾸지쓰(よくじつ)라는 일본말이다. 다음날 혹은 이튿날 배송이 올바른 우리말 표현이다.
독일어의 아침 인사는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이고, 영어의 아침 인사는 “굿 모닝(Good Morning)!”이다. 똑 같이 좋은 아침이란 뜻이다. 그런데 광고 창작자들은 독일어와 영어에서 앞뒤 한 단어씩을 따와 “구텐 모닝(Guten Morning)”을 만들었다.
독일에서 출발할 때는 ‘구텐’하고 인사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미국에 도착해서는 ‘모닝’이라고 인사한다는 의미다. 서양인들이 독일과 미국의 아침 인사 정도는 알고 있기에, 광고 메시지를 누구나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쉬움(Easiness)이다. 쉬움이란 말과 글을 누구나 알기 쉽게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2021)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데는 인종과 문화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쉬움’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을 좋아한다. 드라마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놀이 규칙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자는 어렵게 말하면 안 된다. 쉽게 말해야 한다. 신입사원부터 이사진에 이르기까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경영자의 말뜻을 정확히 알게 되면 그 조직은 좋은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선거 공약을 쉽게 표현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언어는 쉬움과는 거리가 먼 애매함 자체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어, 상황에 따라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말이다. 하지만 애매해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은 결코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
어떤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탓인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터러시(literacy) 교육도 많다.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게임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시네마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소셜 리터러시, 헬스 리터러시 같은 교육을 통해 그 분야에 대한 이해력과 문해력을 높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리터러시 교육을 받고 나서도 그 분야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다.
그건 배우는 분들의 잘못이 아니다. 쉽게 가르치지 못한 강사 때문이다. 강사가 자신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르치면 어렵게 설명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수강생에게는 아쉬움이 아닌 ‘아, 쉬움’을 드려야 한다. 말에서도 글에서도 교육에서도, 결국에는 쉬움이 어려움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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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심사 결과를 기다렸더니, 심사위원 세 명 모두가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세 명 모두의 대체적인 평가 소견은 이랬다. 연구 방법과 결과의 해석은 어느 정도 타당하지만 글쓰기의 기본이 안 됐다는 것.
한때 소설가를 꿈꿨고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사람한테 글쓰기의 기본도 안 됐다고 하니, 좀 어이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품의 특성을 소비자들에게 어떻게든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고민하며 카피를 써 왔으니, 쉬운 표현이 논문에도 반영된 듯 했다.
한 마디로 학술 논문을 너무 쉽게 이해되는 문장으로 써서 투고했던 셈이다. 논문 초안에서 형용사와 부사를 모두 없애고 다시 투고했더니 ‘대폭 수정 후 재심사’ 판정이 내려졌다.
조금 더 어려운 문장으로 고치고 관념어를 일부러 집어넣은 수정본을 다시 투고했더니 ‘부분 수정 후 게재’가 나왔다. 그것을 또다시 고쳐 ‘무수정 게재’를 받기까지 꼬박 1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나는 논문 투의 어려운 글쓰기 스타일을 억지로 배우고 익히려고 고군분투했었다.
그 후 지금까지 10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지만, 왜 논문은 쉬운 문장으로 쓰면 안 되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논문 이외의 글도 쉽게 써야 하는데 너무 어려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어디 글뿐이랴. 쉽게 할 수 있는 말도 꼭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자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음 광고를 보며 쉽게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자.
아우디 A4 올로드 광고 ‘모든 길’ 편(2017)에서는 자동차의 가치를 누구나 알기 쉽게 알렸다. 광고 지면을 크게 가로지르는 헤드라인은 이렇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만, 올로드는 어디든 통할 수 있습니다(All roads lead to Rome, but an Allroad can lead everywhere).”
중학교 이상 졸업한 사람치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는 분은 아마도 없으리라. 광고 창작자들은 말장난 같은 언어유희를 재치 있게 구사한 셈이다.
작은 도시국가였던 로마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로마는 길을 닦으며 시작됐고 길을 확장하며 대제국 로마가 완성됐다.
이런 사정에 주목했던 17세기 프랑스의 우화작가 라 퐁텐(Jean de La Fontaine)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광고에서는 아우디의 올로드(Allroad) 모델을 알리며 브랜드 이름을 살짝 비틀었다. 올로드를 ‘모든 길(All roads)’로 표현하며 자동차의 가치를 누구나 알기 쉽게 알렸다. 페덱스 광고 ‘이튿날 배송’ 편(2018)에서는 독일과 미국의 아침 인사를 섞어 다음날에 배송된다는 국제 특송의 혜택을 쉽게 알렸다.
광고 지면을 중앙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헤드라인은 이렇다. “구텐 모닝(Guten Morning).” 얼핏 보면 국적 불명의 말이다. 그런데 잠깐만 생각해보면 헤드라인의 뜻이 쉽게 다가온다.
지면의 아래쪽에는 “밤새 배송(Overnight delivery)”이라는 카피를 써서, 헤드라인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나라 택배회사에서 ‘익일(翌日)’ 배송이란 표현을 쓰는데, 요꾸지쓰(よくじつ)라는 일본말이다. 다음날 혹은 이튿날 배송이 올바른 우리말 표현이다.
독일어의 아침 인사는 “구텐 모르겐(Guten Morgen)!”이고, 영어의 아침 인사는 “굿 모닝(Good Morning)!”이다. 똑 같이 좋은 아침이란 뜻이다. 그런데 광고 창작자들은 독일어와 영어에서 앞뒤 한 단어씩을 따와 “구텐 모닝(Guten Morning)”을 만들었다.
독일에서 출발할 때는 ‘구텐’하고 인사했는데, 이튿날 아침에 미국에 도착해서는 ‘모닝’이라고 인사한다는 의미다. 서양인들이 독일과 미국의 아침 인사 정도는 알고 있기에, 광고 메시지를 누구나 쉽게 이해했을 것이다. 두 광고에서 채굴한 경영의 스티커 메시지는 쉬움(Easiness)이다. 쉬움이란 말과 글을 누구나 알기 쉽게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의 <오징어게임>(2021)이 세계인의 주목을 받은 데는 인종과 문화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따라할 수 있는 ‘쉬움’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을 좋아한다. 드라마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놀이 규칙은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기업 경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영자는 어렵게 말하면 안 된다. 쉽게 말해야 한다. 신입사원부터 이사진에 이르기까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도록 쉽게 표현해야 한다. 구성원들이 경영자의 말뜻을 정확히 알게 되면 그 조직은 좋은 경영 성과를 낼 수 있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선거 공약을 쉽게 표현해야 한다. 정치인들의 언어는 쉬움과는 거리가 먼 애매함 자체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받아들일 수 있어, 상황에 따라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말이다. 하지만 애매해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은 결코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
어떤 분야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탓인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리터러시(literacy) 교육도 많다. 디지털 리터러시, 미디어 리터러시, 게임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시네마 리터러시, 뉴스 리터러시, 소셜 리터러시, 헬스 리터러시 같은 교육을 통해 그 분야에 대한 이해력과 문해력을 높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리터러시 교육을 받고 나서도 그 분야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어려워하는 분들도 많다.
그건 배우는 분들의 잘못이 아니다. 쉽게 가르치지 못한 강사 때문이다. 강사가 자신도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상태에서 가르치면 어렵게 설명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수강생에게는 아쉬움이 아닌 ‘아, 쉬움’을 드려야 한다. 말에서도 글에서도 교육에서도, 결국에는 쉬움이 어려움을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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