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동 지역 전략적 동맹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의 도움을 받아 탄도미사일을 제조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이란의 탄도미사일 기술 개발을 저지하려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구상이 암초에 부딪힐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CNN은 23일(현지시간) 복수의 소식통과 위성사진을 토대로 사우디가 중국으로부터 탄도미사일 생산 기술을 이전받아 최소 한 곳에서 비밀리에 제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은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중앙정보국(CIA)을 비롯한 정보기관도 최근 몇 달간 양국 간 탄도미사일 관련 대규모 기술 이전에 대한 기밀정보를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위성사진 분석으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가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사우디에서 탄도미사일 관련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중부에 있는 다와드미 인근이다. 제프리 루이스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 교수는 “핵심은 탄도미사일에 쓰이는 로켓 모터를 주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연료 찌꺼기를 소각하는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라며 “소각시설이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로켓 모터를 제작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했다.

CNN은 사우디의 행보가 이란 핵합의(JCPOA) 복원을 통해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제한하려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가 탄도미사일을 제조하고 있다면 라이벌 관계에 있는 이란이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정통 우방으로 통하던 사우디가 미국의 숙적인 중국과 긴밀해져서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안일한 대응을 지적했다. 2019년부터 사우디가 중국과 협력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심 관계자들에게조차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안킷 판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며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미국이 사우디의 움직임을 저지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