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눈을 피해 회사를 경영하던 ‘은둔형 상장사’들이 양지로 소환되고 있다. 주식 투자 인구 증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요구에 따른 행동주의 투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안정적인 사업을 바탕으로 큰 부를 쌓았지만, 불투명한 경영과 소극적 주가 부양으로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런 기업들을 상대로 소액주주와 ESG펀드가 변화를 촉구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결집하는 동학개미들

BYC, 아세아시멘트, 태광산업, 조광피혁, 사조산업 등이 대표적인 은둔형 상장사로 거론된다. 이들 기업은 최근 소액주주연대나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주주제안을 받았다. 주로 불투명한 경영방식을 개선하거나 주주친화 정책을 확대하라는 내용이다. BYC와 아세아시멘트는 주주들로부터 배당금을 확대하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조산업은 기업 합병 과정에서 소액주주들과 대립하며 ‘표 대결’까지 벌이기도 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기업설명회(IR)와 홍보에 소극적이고 주주, 언론 등 대외 접촉을 꺼린다는 점이다. 매년 안정적으로 현금을 벌어들이지만 주가 부양에 적극적이지 않다. BYC는 매년 2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고 투자 부동산 가치가 최소 1조원으로 추정되지만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비율)이 5% 수준이다. 태광산업은 1000억~2500억원의 순이익을 내지만 배당성향이 1%대에 그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주가가 바닥권에 머물고 있다. 거래량도 거의 없다. 하지만 회사가치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BYC는 주주제안을 받기 전까지 시가총액이 2000억원대였다. 투자 부동산 가치의 5분의 1도 반영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태광산업은 주가수익비율(PER)이 4.4배일 정도로 초저평가 상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런 기업들은 저평가를 유발하는 요인 몇 개만 개선돼도 주가가 크게 오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현금 갑부 타깃

본업과 관계없는 활동으로 돈을 버는 기업도 목표가 된다. 조광피혁과 유화증권이 대표적이다. 조광피혁은 벌어들이는 돈을 본업이 아닌 부동산과 주식 투자에 대부분 사용해왔다. 올 3분기 말 기준 주식 평가액이 2083억원에 달한다. 유화증권은 매년 50억~60억원의 순이익을 내지만 상당 부분이 증권업이 아니라 부동산 임대에서 발생한다.

유화증권 소액주주연대는 자사주 소각, 배당금 증액을 요구하며 “유화증권은 모든 증권사가 운영하는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조차 없을 정도로 리테일 영업을 포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광피혁 지분 14.47%를 확보한 ‘주식 농부’ 박영옥 스마트인컴 대표는 회사 측에 자사주 소각을 압박하고 있다. 조광피혁은 자사주 비율이 46%에 달하지만 지난 10년간 한 번도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았다.

소액주주들의 ‘저항’은 ESG 경영 확산과 맞물려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올해 자산운용사들은 지배구조 개선으로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한 ESG펀드를 대거 출시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ESG레벨업펀드는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에 투자한 뒤 개선을 이끌어냄으로써 수익을 추구한다.

최근 BYC 경영참여를 선언한 트러스톤의 다음 타깃은 태광산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트러스톤은 최근 태광산업 지분 5.01%를 확보했다고 공시했다. 머스트자산운용도 지난 10일 태영건설 지분을 기존 8.86%에서 9.99%로 확대했다고 공시했다. 머스트자산운용은 과거 태영건설에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며 주가 상승을 이끌어낸 적이 있는 강성 행동주의 운용사다.

극단적 갈등 부르기도

회사가 주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지만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법원에 회계장부 열람을 신청한 더블유게임즈 소액주주단체는 회사 측과의 갈등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박셀바이오는 종목 토론 게시판에 ‘회사와 공매도 세력이 한패’라는 글을 올린 주주를 고소했다.

최근 1년간 주가가 급락한 바이오 기업 주주들은 강성 행동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평가다. 셀트리온 에이치엘비 씨젠 신라젠 헬릭스미스 주주들은 20일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여 공매도를 규탄했다.

신풍제약 주주들은 임상 3상 중인 항말라리아제 피라맥스와 관련한 개발 진행 정보를 회사 측이 제대로 설명하지 않자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