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전기차로의 전환과 도요타의 위기감
도요타자동차는 현재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연간 1000만 대) 판매하는 회사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이달 14일 “2030년까지 30종의 전기자동차(EV)를 내놓고 연간 350만 대를 판매하겠다”고 야심 차게 선언했다. 그런 선언과는 달리 10년 뒤 세계 자동차 판매 세력권은 격변할 듯하다. EV가 자동차의 주류로 대두되면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차 점유율이 크게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EV가 주류가 될 때 왜 일본차의 위력이 약해질 것인가.

도요타가 세계를 리드하고 있는 것은 장인정신으로 제조하는 아날로그 기술에 통용되는 얘기다. 품질 좋은 아날로그 자동차는 정해진 생산 라인에서 상등품의 소재·부품을 조립해 만들어진다. 일본이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다. 내연기관 자동차처럼 하나씩 다져가며 축적하는 아날로그 기술에서 일본은 아주 큰 강점을 발휘한다. 거기에는 일본이 “주어진 자리에서 목숨 걸고 임한다”는 ‘일소현명(一所懸命)’의 삶을 미덕으로 삼아온 나라라는 역사적 배경이 자리한다.

반면에 일본이 약한 분야가 디지털이다. 집단 내에서 차근차근한 협조에 익숙한 일본인들에게 톡톡 튀는 개성의 디지털은 생리적 거부감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도요다 사장은 EV의 급속한 보급에 신중한 태도였고, EV로의 갑작스런 전환에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그동안 내연기관 엔진을 제조해 온 일본 회사들의 사활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국제사회가 탄소배출 억제 쪽으로 가닥을 잡고, 미국·유럽·중국이 EV로의 발 빠른 전환을 도모하자 도요타도 ‘EV 공급 목표 대폭 상향’이라는 공세로 돌아섰다.

EV로의 전환은 세계 자동차의 판도를 바꾸는 변화이기도 하다. EV가 주류가 되는 것은 자동차가 전자제품으로 바뀌는 서막이며 자동차의 디지털화 진행을 뜻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날로그 기기의 폐쇄적 완성품 출시에는 뛰어나나 개방형 디지털의 버전업 제품에는 뒤처질 여지가 다분하다. 1980년대 소니가 휴대형 음향기기 워크맨으로 세계를 제패한 적이 있다. 워크맨은 정밀한 아날로그 부품의 집합체였다. 디지털 시대가 되자 일본의 전자제품은 세계 무대에서 사라지거나 대만이나 중국 회사에 흡수됐다. EV로의 전환은 도요타 차가 워크맨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TV가 스마트TV로 바뀌듯 자동차도 스마트 EV로 바뀌어 가면 EV용 소프트웨어 개발 경쟁이 격화한다. 음성 지시 운전이 가능해지고, 애플이나 구글 등 소프트웨어 플랫폼 제공 기업의 EV에 대한 영향력도 커질 것이다. 애플이 미국 내 공장 없이 스마트폰을 제조하듯 스마트EV도 미국 내 공장 없이 생산될 수 있다. 도요타도 이들 플랫폼 기업의 EV 진출에 두려움을 표출한다. 이미 EV 제조사인 미국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1조달러로 도요타의 새 배를 넘는다. EV로의 전환은 일본차의 위기를 예감케 한다.

한국의 디지털화 진전이 일본보다 빠르기는 하나 세계 EV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나 기아의 상황도 그리 녹록지 않다. EV 경쟁에서 일본차의 퇴조가 예상되지만 고급 차체 제작이나 상질의 소재·부품 제공자로서 일본 기업의 역할은 남을 것이다. 또한 EV 자동운전 스타트업 대부분이 미국 기업이고 소프트웨어 플랫폼 구축에서 미국 기업을 당해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 EV의 진전은 한국의 자동차업계에 기회이기도 하고 위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