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책과 기록을 불태우려 했을까?…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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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오벤든 옥스퍼드대 보들리도서관장 '책을 불태우다' 발간
"어디서든 책을 불태우는 자들은 결국 인간도 불태울 것이다.
" 19세기 문예 정신을 대표하는 유대계 독일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외침이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1863~1952)도 같은 관점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
우리 조상들은 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으로 기록을 남겼다.
기록물은 인류의 지식과 역사의 보고였던 것이다.
지식의 집적이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는 관념은 고대에 이미 생겨났다.
한편으로, 도서관은 '한 사회 지식의 집적체'라는 상징성 때문에 숱하게 공격당하곤 했다.
대표 사례가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의 참상이다.
그해 8월 25일, 수도 사라예보의 한 건물에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포탄은 충격 즉시 불을 일으키는 소이탄이었고, 포격된 건물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가·대학 도서관이었다.
포탄을 발사한 것은 세르비아 민병대. 도시를 포위한 이들은 도서관의 불을 끄려 하거나 책을 구하려 달려드는 이들을 철저히 차단했다.
그 결과 보스니아 전역의 도서관과 기록관 수십 군데가 파괴됐고, 200만 권의 인쇄본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전쟁과 무관해 보이는 이들 시설이 왜 공격당하고 불태워졌을까?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 도서관의 리처드 오벤든 관장은 저서 '책을 불태우다'를 통해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현대의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리고 오늘날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책·도서관의 존재 의미와 그 역할을 성찰한다.
역사적 수난의 대표 사례가 바로 보들리 도서관이었다.
중세 종교혁명 시기에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이 신교도들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책과 함께 불태워졌는데, 당시 옥스포드대학 도서관도 장서 96.4퍼센트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그 폐허를 딛고 토머스 보들리(1545~1613)는 사재를 털어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단순히 장서를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서관을 체계화·선진화하려는 노력도 펼쳐 오늘날의 도서관 체계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번 책은 서기전 600년 무렵 앗시리아제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앗슈르바니팔의 도서관과 우리에게 이상적 도서관의 효시로 인식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역사 탐색을 시작한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설은 도서관과 기록관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장소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근대 이후의 사례들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설명해간다.
그 첫째가 한 사회·국가가 다른 사회·국가를 공격하면서 지식·문화의 집적체인 도서관을 파괴한 사건들이다.
예컨대, 1814년 영국은 미국을 침공하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불태웠고, 100년 뒤인 1914년에는 독일이 벨기에의 루뱅대학 도서관을 공격했다.
두 번째 사례는 저작자가 직접 혹은 지인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없애려 한 사건들. 시인 바이런이 사망하자 그의 아내와 친구는 숙고 끝에 회고록 원고를 불 속에 내던졌는데, 고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시인 필립 라킨의 일기도 사후에 그의 당부를 충실히 수행한 지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세 번째 유형은 다른 사회의 도서관 등에 보관돼 있던 기록물을 빼돌리는 행위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식민지에 소장된 숱한 유물과 작품들을 약탈했는데, 이 기록 문서들은 열강의 기록물로 간주되곤 했다.
이들 기록물은 식민통치가 끝나는 시점에 식민지배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파기되기도 했고, 억압적 정부에 맞서 다른 나라로 '피신'되기도 했다.
저자가 책과 도서관이 겪은 공격과 파괴의 역사를 톺아본 동기는 오늘날 책과 도서관이 그 어느 때보다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고도로 디지털화되는 현상이 그 핵심.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디지털과 온라인상에서 생성되고 유통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이 여전히 지식과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더욱 우려되는 건 현대인이 기록을 올리는 SNS 등의 플랫폼이 모두 거대 사기업의 소유이자 사업수단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공공적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 보존 작업에 함께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쇠퇴한 까닭이 고대인들의 안주(安住)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더 늦기 전에 디지털·온라인 데이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더불어 우리에게 늘 도서관과 기록관이 필요한 이유로 △ 사회 전체 및 그 안의 특정 공동체의 교육 지원 △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 제공 △ 시민의 행복과 개방 사회의 원칙 뒷받침 △ 투명성·검증·인용·재생력을 통한 진실과 거짓의 판단 △ 각 사회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확보 등을 꼽는다.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펴냄. 440쪽. 2만2천원. /연합뉴스
"어디서든 책을 불태우는 자들은 결국 인간도 불태울 것이다.
" 19세기 문예 정신을 대표하는 유대계 독일시인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외침이다.
스페인 태생의 미국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1863~1952)도 같은 관점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그 과거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
우리 조상들은 문자를 발명하고 그것으로 기록을 남겼다.
기록물은 인류의 지식과 역사의 보고였던 것이다.
지식의 집적이 사회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중요하다는 관념은 고대에 이미 생겨났다.
한편으로, 도서관은 '한 사회 지식의 집적체'라는 상징성 때문에 숱하게 공격당하곤 했다.
대표 사례가 1992년 보스니아 내전 때의 참상이다.
그해 8월 25일, 수도 사라예보의 한 건물에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포탄은 충격 즉시 불을 일으키는 소이탄이었고, 포격된 건물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가·대학 도서관이었다.
포탄을 발사한 것은 세르비아 민병대. 도시를 포위한 이들은 도서관의 불을 끄려 하거나 책을 구하려 달려드는 이들을 철저히 차단했다.
그 결과 보스니아 전역의 도서관과 기록관 수십 군데가 파괴됐고, 200만 권의 인쇄본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전쟁과 무관해 보이는 이들 시설이 왜 공격당하고 불태워졌을까? 영국 옥스퍼드대학 보들리 도서관의 리처드 오벤든 관장은 저서 '책을 불태우다'를 통해 고대 알렉산드리아부터 현대의 디지털 아카이브까지 지식 보존과 파괴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리고 오늘날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책·도서관의 존재 의미와 그 역할을 성찰한다.
역사적 수난의 대표 사례가 바로 보들리 도서관이었다.
중세 종교혁명 시기에 수많은 수도원 도서관과 대학 도서관이 신교도들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책과 함께 불태워졌는데, 당시 옥스포드대학 도서관도 장서 96.4퍼센트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그 폐허를 딛고 토머스 보들리(1545~1613)는 사재를 털어 도서관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단순히 장서를 보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서관을 체계화·선진화하려는 노력도 펼쳐 오늘날의 도서관 체계의 초석을 마련했다.
이번 책은 서기전 600년 무렵 앗시리아제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앗슈르바니팔의 도서관과 우리에게 이상적 도서관의 효시로 인식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역사 탐색을 시작한다.
특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설은 도서관과 기록관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장소라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근대 이후의 사례들에 대해선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설명해간다.
그 첫째가 한 사회·국가가 다른 사회·국가를 공격하면서 지식·문화의 집적체인 도서관을 파괴한 사건들이다.
예컨대, 1814년 영국은 미국을 침공하면서 미국 의회도서관을 불태웠고, 100년 뒤인 1914년에는 독일이 벨기에의 루뱅대학 도서관을 공격했다.
두 번째 사례는 저작자가 직접 혹은 지인을 통해 자신의 저작물을 없애려 한 사건들. 시인 바이런이 사망하자 그의 아내와 친구는 숙고 끝에 회고록 원고를 불 속에 내던졌는데, 고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명분이었다.
시인 필립 라킨의 일기도 사후에 그의 당부를 충실히 수행한 지인의 손에 의해 사라졌다.
세 번째 유형은 다른 사회의 도서관 등에 보관돼 있던 기록물을 빼돌리는 행위다.
제국주의 시기에는 식민지에 소장된 숱한 유물과 작품들을 약탈했는데, 이 기록 문서들은 열강의 기록물로 간주되곤 했다.
이들 기록물은 식민통치가 끝나는 시점에 식민지배의 만행을 숨기기 위해 파기되기도 했고, 억압적 정부에 맞서 다른 나라로 '피신'되기도 했다.
저자가 책과 도서관이 겪은 공격과 파괴의 역사를 톺아본 동기는 오늘날 책과 도서관이 그 어느 때보다 존립의 위기를 겪고 있어서다.
고도로 디지털화되는 현상이 그 핵심. 수많은 기록과 자료가 디지털과 온라인상에서 생성되고 유통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이 여전히 지식과 기억을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더욱 우려되는 건 현대인이 기록을 올리는 SNS 등의 플랫폼이 모두 거대 사기업의 소유이자 사업수단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 공공적 목적을 위해 자발적으로 데이터 보존 작업에 함께하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저자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쇠퇴한 까닭이 고대인들의 안주(安住)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더 늦기 전에 디지털·온라인 데이터의 보존과 관리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더불어 우리에게 늘 도서관과 기록관이 필요한 이유로 △ 사회 전체 및 그 안의 특정 공동체의 교육 지원 △ 지식과 사상의 다양성 제공 △ 시민의 행복과 개방 사회의 원칙 뒷받침 △ 투명성·검증·인용·재생력을 통한 진실과 거짓의 판단 △ 각 사회의 문화적·역사적 정체성 확보 등을 꼽는다.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펴냄. 440쪽. 2만2천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