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카지노, 마약 등과 같이 도박산업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미국에서 나왔다. 티커는 'BAD'다. 이름 그대로 이른바 '나쁜 기업'들만 모아놓은 게 특징이다. 최근 국내를 비롯해 글로벌 증시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주목받고 있는 분위기와는 대조적이다.

29일 블룸버그통신 등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지난 22일 미 뉴욕증시에는 'B.A.D ETF'가 상장됐다. 'EQM BAD 인덱스'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이 상품은 미 상장회사 50~65개로 구성됐다. 도박과 주류, 대마초 등 기업들에 패시브 방식으로 투자한다. 총보수는 0.75%다.

이른바 '죄악주'(비윤리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의 주식) 위주 ETF가 미 증시에 등장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7년 12월 출시된 '어드바이저셰어즈 바이스 ETF'(티커: VICE)다. 티커명 그대로 주류와 게임 등 죄악주를 담았다. 이 상품의 연초 대비 수익률은 11.7%에 달한다. 최근 상품으로는 지난 9월 뉴욕증시 산하 아키펠라고거래소에 상장한 '어드바이저셰어즈 사이커델릭스 ETF'(티커: PSIL)다. 유망한 환각제 관련 기업에 집중 투자한다.

이번 'BAD ETF'가 보다 주목 받는 것은 독특한 출시 취지 때문이다. EQM BAD 인덱스 운용사인 BAD인베스트먼트의 창립자 토미 맨쿠소(Tommy Mancuso)는 시장 대부분의 ETF 상품들이 ESG 산업에 몰리고 있는 데에 반발해서 기획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토미 맨쿠소는 최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업종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있다고 해서 '좋은 투자'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최근 수많은 ESG ETF가 나오고 있지만 어떤 게 ESG인지 그 개념조차 불분명한 게 현실이다. 우리 ETF는 이 상품들보다 훨씬 정확하고 투명하다"고 말했다.

캐시 우드의 아크인베스트는 이달 초 뉴욕증시에 주류와 도박 등의 종목을 아예 배제시킨 'ARK 트랜스패런시(Transparency) ETF'(티커: CTRU)를 내놓기도 했다.

금융투자 전문가들은 이런 죄악주 ETF들의 잇단 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피대상일지 몰라도 수익률 측면에선 ESG 테마보다도 '착하다'는 게 그 이유다.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ESG전략팀장)은 "ESG ETF들은 주로 시가총액 대형주로 구성돼 있는 만큼 단기 성과가 잘 나오고 있지 않다"며 "성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운용사 입장에서 '안티-ESG' 같은 죄악주 ETF를 내놓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익률만 놓고 보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의 이유가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조승빈 대신증권 자산배분팀장도 "운용사로서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고, 투자자들도 ESG 점수가 낮더라도 저평가 주식에 투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는 셈"이라며 "죄악주 대부분이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아니어서 배당 등 수익 측면에서 매력적"이라고 전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에선 당장 이 같은 '죄악주 ETF'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현재 기준 우리나라에 상장된 ETF 종목 수는 총 533개로 이 가운데 죄악주를 모아둔 상품은 없다. 국내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의 ESG 책임투자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안티-ESG 상품을 기대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앞서 내년까지 ESG 관련 자산을 전체 자산의 50%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