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기업들은 사업현장에서 인권침해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행위가 발생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전망이다. 기업에 인권침해 예방 방안 등을 요구하는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인권 존중을 위한 평가 기준을 도입하고,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구제 수단도 마련해야 한다. 경영 일선에 적지 않는 변화가 있을 것이란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사업장서 발생한 인권침해, 기업책임 커진다

해외 발생 인권침해도 기업 책임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이 28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인권정책기본법은 국가의 전반적 인권정책을 포괄적으로 규정한 기본법이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 발의했다.

현재 법무부는 5개년 계획으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내용이 국가인권정책협의회 규정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법률상 근거가 미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무부는 이날 의결된 제정안을 30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이 법은 인권침해 예방과 관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기업의 책임에 대해서도 명시하고 있다. 제22조는 ‘기업은 기업활동을 통해 국내외에서 다른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제3자의 인권침해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기업활동에 따른 인권침해 피해자에게 적절한 권리 구제 수단을 마련할 것도 요구하고 있다. 제23조에는 정부가 기업의 인권 존중 책임을 실천하도록 관련 지침을 비롯해 △정보공개 표준 △평가기준 △평가지표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법조계는 인권정책기본법이 시행되면 기업들이 국내뿐 아니라 해외 사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는 근거가 생기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동안은 직접적 고의나 과실이 입증돼야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이 기업에 있다고 판단했지만, 앞으로는 사전 예방조치 유무를 바탕으로 기업 책임을 입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운송, 가공, 판매에 이르는 기업의 공급망 전체가 인권정책기본법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민창욱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해외 하청업체 생산공장에서 발생한 노동자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도 기업이 져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생긴 것”이라며 “현재 법안상으론 손해배상 등 직접적인 제재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기업이 책임져야 할 영역은 한층 넓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국가인권정책위 설치

정부는 조만간 인권정책을 심의·조정하는 국가인권정책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 조직으로 설치할 계획이다. 이 위원회는 앞으로 기본 인권정책 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점검하면서 관계 부처 간 협의·조정을 이끄는 역할을 맡는다. 국제 인권조약 이행 점검과 국가보고서 작성도 맡을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앞으로 지자체들은 자체 조사가 가능한 인권침해 조사기구 설치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인권정책 수립·시행을 맡는 인권정책책임관도 지정해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회 통과 시기를 예측하긴 쉽지 않지만 이르면 내년에 제정안이 시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번 제정안으로 국민의 실질적인 인권 보장 수준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