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부 통계는 정확한가?
최근 통계청이 2020년 기준으로 개편한 소비자물가지수를 발표했다. 물가목표치인 2%를 어차피 달성하지 못하니 통계 개편 탓으로 돌리려는 꼼수라든지, 휘발유 가중치를 낮춰 체감 물가와 괴리가 오히려 커졌다는 등 말이 많다. 이런 논란은 기준연도를 바꿀 때마다 일어났다. 2010년 기준으로 개편한 2011년에는 금반지 대신 14K 미만의 장신구를 넣었다며, 소비자물가지수를 의도적으로 낮추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들었다. 우리나라만 유별하게 개편하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추진하는 통계청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이런 논란에도 통계청이 조사품목 조정을 반복하는 이유는 현실을 잘 반영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5년마다 조사품목을 바꾸는 것이 현실을 보다 잘 반영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5년간 조사품목을 조정한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5년간 조사품목이 고정된다는 의미다. 그 5년 사이에도 새로운 상품은 등장하고 쓰이지 않는 상품은 퇴장하며 상품의 질도 바뀐다. 이론적으로 한 경제의 물가수준을 제대로 파악하고 싶다면 거래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을 조사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타당하지 않다. 그래서 표본조사 방식을 선택하고 5년마다 상품을 조정하는 것이다. 일종의 궁여지책인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궁여지책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기술 발전으로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물가 측정 방식이 현재는 가능하게 됐다. 스캐너 데이터가 한 예다.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할 때 찍는 바코드를 통해 수집되는 데이터다. 스캐너 데이터를 이용하면 현재의 소비자물가지수보다 더 정확한 물가를 측정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일본은 1990년대 들어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콜금리를 내리는 통화정책을 계속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디플레이션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에 대한 연구 중 눈길을 끄는 주장이 있다. 와타나베 쓰토무 도쿄대 경제학부 교수는 침체가 장기화된 이유를 통화정책 실패가 아니라 부정확한 통계에서 찾았다. 닛케이가 제공하는 스캐너 데이터를 이용해 물가지수를 작성해 보니,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시기가 1992년 초순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총무성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기준으로 판단한 물가상승률 그래프를 보면 1995년에 들어서야 디플레이션에 돌입한 것으로 나왔다.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만약 일본은행이 1995년이 아니라 1992년에 적극적이고 대담한 통화정책을 시작했다면 1990년대 침체가 장기화됐을까 하는 것이 와타나베 교수의 주장이다. 필자도 롯데멤버스의 스캐너 데이터를 가지고 비슷한 방식으로 물가지수를 측정한 뒤 통계청 생활물가지수와 비교해 봤다. 조사기간 동안 두 물가지수 움직임은 자못 달랐다. 물론 데이터의 범위가 다르므로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며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 수 있다.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통계청도 정확한 물가를 측정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정부가 집계하는 통계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정부도 부정확한 통계를 생산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민간의 통계를 이용한 체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과거에는 민간이 데이터를 모으고 가공하는 작업을 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민간이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능숙히 다루는 인재도, 디지털화하는 기술도 있다. 물론 스캐너 데이터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이 풍부한 데이터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나라의 정보기술(IT)은 세계가 부러워할 정도로 발달해 있고,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입수하는 데는 이미 선진국이다. 이제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