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하지 마라. 종종 열쇠 꾸러미의 마지막 열쇠가 자물쇠를 연다.” 18세기 영국 정치사상가 필립 체스터필드가 아들에게 들려준 교훈이다. 옛날에는 여러 개의 열쇠를 한 꾸러미에 엮어서 다니다 하나씩 자물쇠 구멍에 맞추곤 했다. 개중에는 마지막에야 열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다.

베네수엘라의 다이아몬드 채집꾼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마른 강바닥에서 다이아몬드가 섞였을지 모르는 조약돌을 수없이 집어 들었다 내려놓던 그는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려다 한 번 더 돌을 집었다.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난히 묵직한 그 돌은 크고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다.

최고의 보석인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소로 구성돼 있다. 연필심에 쓰이는 흑연도 그렇다. 오랜 세월 땅속에서 높은 압력을 견디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흑연이 된다. 역경을 이겨야 보석이 되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절망을 이긴 사람에게는 새로운 문이 열린다. 《실낙원》의 작가 존 밀턴은 44세에 시력을 잃었다. 청교도 혁명을 지지했던 그는 반대파로부터 처형 직전의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눈이 먼 상태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딸들에게 원고를 구술해 《실낙원》과 《복낙원》 《투사 삼손》 등의 걸작을 남겼다.

올해는 모두들 힘겨웠다. 미증유의 감염병 회오리와 정치권의 편싸움까지 겹쳐 온 나라가 휘청거렸다.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직장을 잃은 가장과 봉쇄적 방역정책으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던 자영업자들의 고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입시에 실패하거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어깨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러나 우리에게는 ‘내일’이 있다. 포기하지 말자. 어둠의 그림자가 짙어도 두려워하지 말자. 그림자는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추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신》의 작가 프란츠 카프카도 “이미 일이 끝장난 듯싶지만 결국은 또다시 새로운 힘이 생기게 된다”며 우리를 격려했다.

행여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하는 것도 경계하자. 생각의 그릇에 따라 희망의 크기가 달라진다. 혹한의 세밑에서도 봄을 위해 씨앗을 준비하는 자세로 새해를 맞이하자. 우리에겐 아직 마지막 열쇠가 남아 있지 않은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