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8일 서울 용산 노들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 문 대통령,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8일 서울 용산 노들섬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위원회 제2차 전체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 문 대통령,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2050탄소중립위원회가 탄소중립 목표에 대한 현장의 의견을 듣겠다며 작년 8월부터 10월까지 산업계, 노동계 등과 총 26차례 '협의체 회의'를 열었지만 회의록은 단 한 건도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2일 확인됐다. 탄소중립에 대한 의견수렴을 명분으로 회의를 열어놓고 정작 회의 참석자들이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에 대해선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이다. 탄소중립위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탄소중립 목표를 내놓으면서도 사회적 의견수렴 절차는 형식적으로만 운영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절차적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의 목소리카 커지고 있다.

회의록 작성은 '0'건

탄소중립위가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탄소중립위는 지난해 8월 5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한 이후 10월 18일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내놓기 전까지 총 26번의 '협의체 회의'를 열었다. 탄소중립위는 시나리오 최종안을 내놓을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과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업계·노동계·시민사회·청년·지방자치단체 대상의 '협의체'를 구성하고 총 20여 회가 넘는 회의를 개최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장의 의견수렴 절차를 충분히 거쳤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탄소중립위는 협의체 회의에서 어떠한 의견이 오고 갔는지 내용이 담긴 '회의록' 자료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한 데 대해 "회의록은 작성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탄소중립위의 이 같은 답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업계 간담회를 자주 개최하는 한 정부부처 관계자는 "정책 수립을 위해 기업인들을 불러 모아놓고선 정작 어떤 의견이 제기됐는지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이거나 해당 의견을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경제부처 관료는 "간담회에서 모든 말을 기록으로 남기진 않더라도 핵심 내용을 간단한 형태로라도 정리해놓는 게 정상"이라며 "특히 탄소중립처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선 반드시 회의록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
탄소중립위가 26차례의 회의를 진행하면서 산업계의 의견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6번의 회의는 정부가 작년 8월 5일에 발표한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회의 21번과 작년 10월 8일에 내놓은 NDC 목표 상향안에 대한 회의 5번으로 나뉜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협의체 회의엔 산업계가 참여했지만, NDC 상향안을 논의한 5차례의 회의엔 산업계가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 시민사회와 중소기업, 노동계, 청년단체만 참여했을 뿐이다. 탄소중립위가 10월 8일에 내놓은 NDC 상향안은 2018년 대비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목표를 종전 26%에서 40%로 대폭 올리는 내용으로, 산업계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큰 상황이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한경DB
탄소중립 시나리오. 한경DB
NDC 상향안을 논의한 5차례의 협의체 회의마저도 10월 12일부터 10월 14일까지 단 3일 동안만 진행됐다. 4일 뒤인 10월 18일 정부는 NDC 상향안과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을 심의·의결했다. 의견수렴 절차가 '졸속'으로 진행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탄소중립위 관계자는 회의록을 남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 "회의가 너무 많아 회의록을 일일이 작성할 여력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NDC 상향안과 관련한 협의체 회의에서 산업계가 배제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일정이 빠듯했다"고 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회의록을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산업계, 노동계 등 각 협의체의 의견서를 서면으로 제출받았기 때문에 의견수렴 절차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서면으로 의견서 받으면 끝인가"

탄소중립위는 서면으로 협의체 의견서를 제출받았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의견서로 제출된 공식 제안 대부분은 묵살됐다. 예컨대 노동계(발전분야)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의견서에서 "고용 안정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 이산화탄소 포집 설비(CCS)를 추가하는 조건으로 일부 석탄화력 발전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중간에 포집해 대기로 배출하지 않는다면 굳이 석탄화력 발전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탄소중립위가 지난해 10월 18일에 내놓은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엔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산업계(수송)는 의견서를 통해 "내연기관차를 강제로 퇴출시킬 경우 내연기관차의 친환경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한편, 자동차 산업이 중국에 의해 좌우될 우려가 있다"며 "전기차만이 친환경차이고 내연기관차는 공해차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기술 중립적이고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탄소중립위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에서 전기·수소차 보급률을 '97% 이상'으로 제시하면서 사실상 내연기관차 퇴출을 선언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현실적이지 못한 탄소중립 목표와 실현방법을 내세우다 보니 회의록 미작성, 산업계 의견 배제 등과 같은 중대한 절차적 하자가 발생했다"며 "다음 정부에선 탈원전 정책 폐기를 포함해 탄소중립 실현 방법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