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규모 30년새 38배 증가…양국 경제 성장에 기여
사드·북핵 문제서 '한계'도 절감
"차이 인정하며 공존하는 '화이부동' 필요"
빛과 그림자 공존하는 한중수교 30주년…미중경쟁기 뉴노멀 필요
202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 30주년을 맞이한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가운데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격변기에 부합하는 한중관계의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을 찾아가는 한 해가 될지 주목된다.

6·25전쟁이 만든 적대관계를 이어가던 양국은 포스트 냉전의 훈풍을 타고 1992년 8월 24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북방외교,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 유혈진압 이후 덩샤오핑의 외교적 고립 탈출 시도 등 쌍방의 전략과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적대의 그늘을 걷어내고 전략적 동행을 택한 양국의 관계는 지난 30년간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성장을 했다.

특히 한국의 기술과 자본, 중국의 광대한 시장을 상호 활용한 경제면에서 성과가 두드러졌다.

31일 코트라(KOTRA)에 따르면 한국의 대 중국 교역 규모는 1992년 63억달러에서 2020년 2천450억달러로 약 38배 증가했다.

2020년 기준으로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전체 교역량의 24.6%)이자 최대 수출·수입국(25.9%·23.3%)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중 교역의 비약적 증가 속에 양국은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10위 수준(한국)과 선두를 맹추격하는 2위(중국)로 각각 발돋움했다.

명목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992년 3천560억달러에서 2020년 1조6천310억달러로 3.6배 증가했고, 같은 기간 중국은 4천920억달러에서 14조7천230억달러로 28.9배 폭증했다.

2015년 12월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양국 관계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반면 외교·안보 영역에서 한중은 2003년부터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지정학적 한계 속에 '가깝고도 먼' 관계를 확인했다.

중국은 전략적 판단에 따라 북한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국과 수교했지만 지난 30년간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방기한 적이 없었다.

천안함 폭침 때 북한의 입장을 옹호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앞에서 한국이 자위 수단으로 택한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에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으로 보복했다.

또 한국은 중국의 협조를 발판삼아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북한의 최대 교역국으로서 가장 큰 대북 지렛대를 가진 나라이지만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고, 비핵화의 결단을 유도하는데 그 지렛대를 충분히 쓰지 않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국운을 건 미중 전략경쟁에 직면한 중국으로선 북한 체제 붕괴 또는 북미관계 급진전이라는 양 극단의 상황을 피하는 것을 북한의 비핵화보다 우선 순위에 올려 놓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경제면에서도 급격한 성장에 가려졌던 그늘이 조금씩 드러나는 양상이다.

11월의 요소수 부족 사태가 말해주듯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의존은 심각하다.

중국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50% 이상인 품목이 2천개, 90% 넘는 품목이 5백개에 달하는 가운데, 중국이 자국 수급 사정 등을 이유로 주요 물자 수출을 막을 가능성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또 한중 양국민이 상대국에 갖고 있는 감정의 문제도 30돌을 맞이하는 양국관계의 질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특히 한국 내 반중 정서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한국 민간 싱크탱크인 동아시아연구원(EAI)과 일본 비영리 싱크탱크인 '겐론 NPO'(言論 NPO)가 한국인 1천명을 상대로 조사해 지난 9월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응답자는 지난해 59.4%에서 올해 73.8%로 증가했다.

반면 긍정적인 인식은 16.3%에서 10.7%로 감소했다.

체제가 다른 이웃 강대국의 부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경계심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현 중국 지도부의 강경한 대외정책 기조와 홍콩의 급속한 중국화 양상을 보면서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거리감과 이질감은 갈수록 커지는 양상이다.

2021년 한중 당국 간 대화는 정상회담만 없었을 뿐 사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활발했지만 국민 정서의 골을 메우지 못하면 양국관계 발전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처럼 수교 30주년에 즈음해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양국관계는 미중 전략경쟁 심화 속에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느냐, '조정 국면'을 거치느냐의 갈림길에 선 형국이다.

미국은 안보 면에서 동맹국을 중심으로 한 소(小)다자 협의체를 통해, 경제면에서 중국을 배제한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면서 한국의 동참 내지 기여를 기대하고 있고, 중국은 이런 미국의 요구에 한국이 거리를 두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동안 자주 회자됐던 '안미경중(安美經中·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식 접근법은 더 이상 통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결국 미중 전략경쟁 심화라는 엄혹한 대외 환경 속에서 한중관계의 '뉴노멀'을 만드는 일은 한국 수교 30주년에 즈음한 정부와 경제계의 숙제가 됐다.

우선 사드 사태와 같은 변수 앞에 양국관계가 일순간 좌초하는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상대에 대한 보다 냉정한 상호 인식 하에 관계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는 양국 경제 교류를 증진시키는 동시에, 과도한 대 중국 의존도가 대외 정책의 운신 폭을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판 찾기'를 모색해야 할 상황이다.

그와 동시에 중국도 북핵 위협 등과 관련한 한국의 정당한 안보상 이해를 존중하도록 만드는 외교력 발휘가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한중관계를 구동존이(求同存異·일치를 추구하되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두는 것)로 표현했다면 수교 30주년에 즈음해 이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협력과 공존을 꾀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중이 가치와 정체성, 국익에서 차이점을 서로 인정하는 가운데 차이점 속에서 평화롭게 상호 공존 및 발전하고,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빛과 그림자 공존하는 한중수교 30주년…미중경쟁기 뉴노멀 필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