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멈췄던 일상 재개 기대 > 31일 서울 명동거리가 추운 날씨에도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방역당국은 국내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범준 기자
< 멈췄던 일상 재개 기대 > 31일 서울 명동거리가 추운 날씨에도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방역당국은 국내에서도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범준 기자
2021년 11월 26일 세계 주식시장이 ‘검은 금요일’을 맞았다. 코로나19 신종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세계 경제를 1년 전으로 후퇴시킬 것이란 두려움에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상황은 바뀌었다. 세계 처음으로 오미크론 변이 유행을 겪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큰 인명 피해 없이 소강상태를 맞았다. 미국 영국 등은 록다운(고강도 봉쇄) 없이 겨울을 나고 있다.

1년 전과는 많은 게 달랐다. 오미크론이 이전 것보다 약하다는 보고가 속속 나왔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해 면역을 얻은 사람이 많은 데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 면역 방패가 형성됐다. 공격 무기로 꼽히는 먹는 치료제도 개발됐다. 새해 팬데믹(대유행) 국면이 바뀔 것이란 희망적 전망이 잇따르는 배경이다.

‘힘든 1월 보낸 뒤 일상회복’ 전망

새해 마스크 벗나…"오미크론이 팬데믹 종착역 될 것"
권준욱 국립보건연구원장은 31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새해에는 달라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오미크론의 위중도가 낮다는 게 확인되면 서서히 멈췄던 일상을 다시 가동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2020년 1월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나온 뒤 2년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함께 방역 상황을 지휘해온 책임자다. 그는 “(올해엔) 당연히 달라진 일상으로 갈 수 있고, 가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팬데믹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기가 올 수 있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도 이런 전망이 나왔다. 백악관의 ‘감염병 사령탑’인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장은 “전파력이 높고 중증도가 낮은 변이가 다른 변이를 대체하면 긍정적 결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오미크론이 팬데믹 종식을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알리 모크다드 미 워싱턴대 교수는 “확진자가 계속 늘면서 정점을 찍는 등 (각국이) 힘든 1월을 보내겠지만 이후 확산세가 빠르게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희망’ 싹 틔운 남아공과 오미크론

2021년 11월부터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했던 남아공에선 환자가 급격히 줄었다. 지난 19~25일 1주일간 확진자는 한 주 전보다 29.7% 급감했다. 2만6000명 넘게 치솟았던 확진자는 7000명대로 떨어졌다. 남아공 정부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 시행하던 통행금지도 해제했다. 파리드 압둘라 남아공의학연구회 소장는 “오미크론은 거대한 파도라기보다는 잠깐 지나간 홍수에 가까웠다”고 평했다.

오미크론 유행 시기 남아공 의료기관에서 숨진 코로나19 환자는 델타 유행 때의 11분의 1 수준이었다. 평균 입원 기간도 이전 유행의 절반인 사흘에 그쳤다. 남아공 하우텡지역 환자의 중증도는 델타 유행 때보다 73% 낮았다. 만 19세 이하 감염자와 입원 환자가 함께 늘었지만 사망자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남아공의 백신 접종률은 30.9%다. 백신 접종률이 두 배 넘게 높은 선진국은 좀 더 쉽게 유행 파도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오미크론이 지배종으로 자리 잡은 영국 등에서도 사망자가 급격히 늘지 않고 있다. 유행 시작 후 한 달간 크게 번지지만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란 시나리오에 전문가들은 무게를 두고 있다.

먹는 치료제도 보급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꼽힌다. 백신이 중증 악화를 막아줬을 가능성이 높다. 자연 면역을 얻은 사람도 늘었다. 오미크론이 인명 피해를 적게 남기는 방향으로 진화했을 수도 있다. 미국 영국 홍콩 일본 등에선 이를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코로나19는 호흡기 감염병이다. 폐가 망가지면서 증상이 악화된다. 오미크론은 이전 변이보다 폐 세포에 쉽게 침투하지 못했다. 중증 위험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의미다. 영국 리버풀대팀은 이 변이에 감염된 쥐가 6일차에 스스로 회복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체중이 계속 줄고 증상이 악화돼 안락사시켜야 했던 델타 감염 쥐와는 확연히 달랐다.

화이자와 머크(MSD)가 먹는 치료제를 출시해 팬데믹 극복을 위한 새 장이 열리는 것도 희망적이다. 증상 발생 5일 안에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를 복용하면 입원·사망 위험이 88%까지 낮아진다. 강력한 무기가 생기는 것이다.

다만 이런 희망적 전망을 무너뜨리는 다른 난관이 닥칠 수도 있다. 새 변이의 출몰이다. 파우치 소장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인류를 속인 적이 있다. 백신이 출시되면서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델타가 등장하면서 모든 일을 망쳐버렸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