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호랑이 나라' 한국
15세기 중반 조선 세조 때 호랑이가 창덕궁 후원에 나타났다. 인왕산과 북악산을 타고 들어온 것이었다. 호랑이의 궁궐 출몰은 19세기까지 이어졌다. 민가의 호환(虎患)도 잦았다. 17세기 초까지 매년 잡힌 호랑이와 표범이 1000마리에 달했다. 오죽하면 “조선에선 1년 중 반은 호환 문상을 다니고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는 말이 중국에서 나왔을 정도다.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가 워낙 많아서 시인 최남선이 “조선은 호담국(虎談國)”이라고 했고, 중국 문호 루쉰은 조선인을 만날 때마다 “호랑이 얘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우리나라 호랑이 가죽은 빛깔이나 품질에서 세계 제일로 꼽혔다. 명·청나라는 호피를 꼭 조선의 조공품에 포함시켰다. 호랑이 한 마리 가죽이 대궐 한 채 값과 맞먹었다. 구한말 외국인들도 조선을 ‘호랑이의 나라’로 묘사했다.

호랑이는 이처럼 두렵고 귀한 존재여서 신성함의 대상이 됐다. ‘범’이라는 우리말이 금기시되면서 명칭은 ‘범 호(虎)’와 ‘이리 랑(狼)’을 합친 호랑이로 대체됐다. 호랑이 그림은 나쁜 기운을 막는 벽사(邪) 이미지로 쓰였다. 새해 첫날 호랑이를 그린 세화(歲畵)로 액막이를 했고, 단오에는 쑥으로 만든 호랑이 형상의 애호(艾虎)로 악귀를 막았다.

호랑이와 범이 포함된 지명도 많다. 새해 일출 명소인 경북 포항 호미곶을 비롯해 부산 수정산 자락의 범일동, 범내골, 범천동 등 전국에 389곳이나 된다. 캐릭터도 친숙해 서울올림픽의 ‘호돌이’와 평창동계올림픽의 ‘수호랑’, 도쿄올림픽 한국선수단의 캐치프레이즈 ‘범 내려온다’ 등에 활용됐다.

한때 우리나라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로 불렸다. 일본이 ‘네 마리 용’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서구에서는 전설 속의 용보다 현실의 호랑이 이미지를 살려 ‘네 호랑이(Four Asian Tigers)’로 칭했다. 이 중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다.

올해는 세계 경제의 대전환기다. 안으로 성장동력을 키우면서 밖으로 수출증진에 더 힘쓸 때다. 용맹하고 신성한 호랑이의 힘으로 역병도 물리치고 제2 도약의 기틀을 닦아야 한다. 벌써부터 금융업과 유통업계의 ‘호랑이 마케팅’이 열기를 뿜고 있다. 첨단산업 분야의 ‘미래 마케팅’도 호랑이 기세만큼 맹렬하길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