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 전국은행연합회장은 5일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대형 은행은 소매금융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업금융, 인프라금융 등 다양한 특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김광수 전국은행연합회장은 5일 은행회관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대형 은행은 소매금융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업금융, 인프라금융 등 다양한 특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문찬 기자
“데이터를 원석 상태로 고르고 조합하는 능력이 금융회사의 미래를 좌우할 겁니다. 데이터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금융 계열사 간 정보 공유 제한 규제를 완화하고, 은행의 비금융 사업 진출에 대한 폭넓은 허용이 시급합니다.” 김광수 전국은행연합회장은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빅테크(대형 인터넷기업)의 금융 진출이 본격화하면서 전통 은행산업은 올해 격동기를 맞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올해 은행산업의 최대 화두로 △금리 상승과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대한 대응 △가상자산 업무 진출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꼽았다.

김 회장은 은행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관치금융이란 말이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균형추가 당국에 쏠려 있다”면서도 은행에 대해선 “가계대출 일변도에서 벗어나 인프라, 기업금융 등 특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금융산업의 특성상 적절한 규제가 불가피한 점도 있다”며 “규제의 양상이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600조원 안팎의 자산을 보유한 거대 금융지주엔 금융당국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와 지식이 쌓이고 있다”며 “당국이 민간 금융회사를 일일이 관리하기 힘들어질 시점이 머지않았다”고 했다. 금융사 덩치가 커질수록 자연히 정부 관여가 줄어들고 민간의 자율 규제가 중요해질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지난해 사모펀드 사태를 계기로 은행연합회가 은행 이사회의 내부 통제 역할 강화에 대한 표준 기준을 마련한 것을 강화된 자율 규제의 예로 꼽았다. 국내 은행의 경쟁력 수준에 대해 김 회장은 “총자산 규모로 보면 국내총생산(GDP)의 1.5배가량으로 주요 선진국 평균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리테일(소매) 금융 의존도가 높고 기업금융 역량은 다소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김 회장은 “대형 글로벌 인프라 프로젝트와 대기업 금융을 제대로 다루는 은행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뿐이라는 건 큰 문제”라며 “민간은행도 기업금융에 자기자본을 투입하고 특기를 개발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들이 소매금융 일변도에서 벗어나 지식재산권(IP) 대출 등 기술금융을 전문적으로 다루거나, 프라이빗뱅커(PB)의 역량에 의존하는 대신 시스템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김 회장은 국내 은행의 글로벌화에 대해서도 “소매가 아니라 기업금융, 투자금융(IB)으로 해외에 나가야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업의 미래를 좌우할 요소로는 ‘데이터’를 꼽았다. 김 회장은 “앞으로는 빅데이터가 금융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며 “규제 측면에선 금융 계열사 간 정보 공유 제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행연합회는 금융 분야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 시작을 계기로 금융당국에 은행이 인공지능(AI)기반의 투자일임업을 영위하게 해 달라고 건의하고 있다.

김 회장은 “은행권의 ESG 경영 수준을 높이기 위해 은행연합회 주도로 금융권 공동의 ‘ESG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달 각 은행의 ESG 담당자가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가이드를 담은 웹페이지를 내놓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회장은 “지방은행의 지역경제에서의 위상과 역할을 감안해 지역금고 선정에서 우선적인 권한을 주고, 중소기업 대출 규제를 완화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전문은행과 관련해선 “현재와 같은 과점 라이선스가 아니라 ‘스몰 라이선스’로 가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했다.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토스뱅크 외에 추가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 회장은 올해 가상자산 사업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3대 금융당국인 중앙은행(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통화감독청(OCC)이 연내 민간은행의 가상자산 업무 범위를 정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내 은행은 가상자산 사업에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금융회사는 가상자산 업무를 하지 못하고, 상법 적용만 받는 일반 기업만 규제 없이 사업을 벌이고 있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은행의 부수 업무 규정이 완화되고, 가상자산 관련 업무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져야 사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광수 회장은

△1957년 전남 보성
△1976년 광주제일고 졸업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3년 행시 27회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2008년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
△2011년 금융정보분석원장
△2018년 농협금융지주 회장
△2020년~ 전국은행연합회장


김대훈/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