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50년 데이터로 본 '일본의 노화'…한국의 미래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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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위기국가 일본
정현숙 지음 / 에피스테메
428쪽│2만2000원
경제대국서 노인대국으로
고령자 복지에 세금 쏟아붓느라
저출산·실업정책 뒷전으로 밀려
정현숙 지음 / 에피스테메
428쪽│2만2000원
경제대국서 노인대국으로
고령자 복지에 세금 쏟아붓느라
저출산·실업정책 뒷전으로 밀려
한때는 경제 대국으로 불렸다. 요즘엔 노인 대국으로 익숙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가장 늙은 나라 일본 얘기다. 일본은 1990년까진 유럽 선진국들보다 고령자 비율이 낮았지만 2005년에는 고령자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1등으로서 일본(Japan as No.1)’은 변함없다. 챔피언 자리에 오른 분야가 바뀌었을 뿐. 하지만 더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늙어가는 속도에서 조만간 우리가 일본을 추월할 기세이기 때문이다.
《인구위기국가 일본》은 일본이 직면한 인구 문제를 150년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책이다. 인구 변화 추이부터 저출산·고령화의 진행 과정, 인구 변동이 가져온 지방 쇠퇴와 소멸, 일본 정부의 대책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상세하고 냉정한 평가 등 인구와 관련한 주제를 두루 다룬다.
익히 알려진 사례지만, 일본의 인구 변화 추이는 다시 봐도 충격적이다. 일본의 총인구는 2008년 1억2808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까지 25년간 1310만 명 감소했다. 연평균 19만 명이 사라졌다. 2060년에는 총인구가 9284만 명까지 쪼그라들 전망이다. 전쟁이나 대형 천재지변이 없어도 향후 40년간 3248만 명, 연평균 79만 명의 인구가 위축된다는 얘기다.
규모가 줄어들 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평균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 2015년 기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일본이 26.6%로 한국(13.1%)의 두 배를 넘는다. 이탈리아(22.4%) 독일(21.2%) 스웨덴(19.9%) 등 다른 ‘고령 국가’들도 가뿐히 압도한다. 고령 인구는 2040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생산연령 인구는 1995년 이후 25년간 1310만 명 줄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25년 이후 30여 년간 매년 200만 명씩 태어났던 사람들이 1990년대 이후 고령자로 편입되면서 다사(多死) 시대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반면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이다. 연애하지 않는 젊은이가 흔해지면서 결혼은 특별히 노력해야 하는 ‘일(곤카쓰·婚活)’이 됐다.
급속한 노화가 남긴 주름은 깊다.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쇠퇴와 소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불안이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었다. 지방에서부터 ‘소멸’은 현실화했다. 시마네현 고쓰시 세지리 마을은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2006년 폐촌됐다. 2015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50% 이상인 시(市)·정(町)·촌(村)은 20개. 40%를 넘는 지역은 220개에 달했다.
남은 것은 폐허였다. 상속되지 않은 빈집은 2013년 기준 820만 채나 된다. 2033년까지 2150만 채, 세 집 중 한 집꼴로 늘 전망이다. 수리도, 재건축도 힘든 40년 넘은 집합주택 역시 2027년이면 185만 채로 늘어난다. 논밭과 산림마저 방치되고 있다. 가치가 없는 부동산은 재산세와 관리비만 들어가는 마이너스 자산일 뿐이다. 매년 부동산 상속 포기가 10만 건을 넘는다. 연고 없는 무덤도 급증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공영묘지의 절반 이상이 무연묘일 정도다.
일본이라고 손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책이 고령자에게 쏠리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21년 정부 일반세출에서 사회보장 비용에 사용되는 비중은 53.5%에 이른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고령자 복지에만 집중된 탓에 생산연령을 대상으로 한 가족·노동·실업 정책은 매우 부실하다. 저출산 대책도 뒷순위로 밀렸다.
그나마 애써 마련한 고령화 대책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도시의 핵심 기능을 한데 집약하는 콤팩트화와 네트워크화는 지역민의 반발, 지방 정치권의 저항으로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정책 수혜 대상인 고령층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점은 실타래를 복잡하게 꼬았다. 전체 금융자산의 65.7%를 쥐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층을 두고 젊은 층은 ‘도망치는 세대(逃げ切り世代)’라고 불렀다. 고도성장기의 혜택을 누리고 후세대에 엄청난 빚만 떠넘긴 세대라며 빈정거리는 것이다. 풍요한 고령 세대를 가난한 현역 세대가 부양하는 모델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일본의 행보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의 위기를 맞은 첫 국가가 일본이라면 한국은 그 길을 가는 두 번째 국가이기 때문이다. 속도는 한국이 훨씬 빠르다. 합계출산율이 5.0명에서 2.1명으로 떨어지기까지 일본은 31년 걸렸는데 한국은 19년에 불과했다. 2050년이면 일본을 추월해 세계에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어둡기만 한 일본의 오늘은, 과연 피할 수 없는 한국의 내일이 될 것인가.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인구위기국가 일본》은 일본이 직면한 인구 문제를 150년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책이다. 인구 변화 추이부터 저출산·고령화의 진행 과정, 인구 변동이 가져온 지방 쇠퇴와 소멸, 일본 정부의 대책과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상세하고 냉정한 평가 등 인구와 관련한 주제를 두루 다룬다.
익히 알려진 사례지만, 일본의 인구 변화 추이는 다시 봐도 충격적이다. 일본의 총인구는 2008년 1억2808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0년까지 25년간 1310만 명 감소했다. 연평균 19만 명이 사라졌다. 2060년에는 총인구가 9284만 명까지 쪼그라들 전망이다. 전쟁이나 대형 천재지변이 없어도 향후 40년간 3248만 명, 연평균 79만 명의 인구가 위축된다는 얘기다.
규모가 줄어들 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평균 연령도 올라가고 있다. 2015년 기준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일본이 26.6%로 한국(13.1%)의 두 배를 넘는다. 이탈리아(22.4%) 독일(21.2%) 스웨덴(19.9%) 등 다른 ‘고령 국가’들도 가뿐히 압도한다. 고령 인구는 2040년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생산연령 인구는 1995년 이후 25년간 1310만 명 줄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925년 이후 30여 년간 매년 200만 명씩 태어났던 사람들이 1990년대 이후 고령자로 편입되면서 다사(多死) 시대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반면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는 사례가 늘어난 영향이다. 연애하지 않는 젊은이가 흔해지면서 결혼은 특별히 노력해야 하는 ‘일(곤카쓰·婚活)’이 됐다.
급속한 노화가 남긴 주름은 깊다.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쇠퇴와 소멸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불안이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었다. 지방에서부터 ‘소멸’은 현실화했다. 시마네현 고쓰시 세지리 마을은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2006년 폐촌됐다. 2015년 조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50% 이상인 시(市)·정(町)·촌(村)은 20개. 40%를 넘는 지역은 220개에 달했다.
남은 것은 폐허였다. 상속되지 않은 빈집은 2013년 기준 820만 채나 된다. 2033년까지 2150만 채, 세 집 중 한 집꼴로 늘 전망이다. 수리도, 재건축도 힘든 40년 넘은 집합주택 역시 2027년이면 185만 채로 늘어난다. 논밭과 산림마저 방치되고 있다. 가치가 없는 부동산은 재산세와 관리비만 들어가는 마이너스 자산일 뿐이다. 매년 부동산 상속 포기가 10만 건을 넘는다. 연고 없는 무덤도 급증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선 공영묘지의 절반 이상이 무연묘일 정도다.
일본이라고 손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책이 고령자에게 쏠리면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2021년 정부 일반세출에서 사회보장 비용에 사용되는 비중은 53.5%에 이른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고령자 복지에만 집중된 탓에 생산연령을 대상으로 한 가족·노동·실업 정책은 매우 부실하다. 저출산 대책도 뒷순위로 밀렸다.
그나마 애써 마련한 고령화 대책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도시의 핵심 기능을 한데 집약하는 콤팩트화와 네트워크화는 지역민의 반발, 지방 정치권의 저항으로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정책 수혜 대상인 고령층이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는 점은 실타래를 복잡하게 꼬았다. 전체 금융자산의 65.7%를 쥐고 있는 65세 이상 고령층을 두고 젊은 층은 ‘도망치는 세대(逃げ切り世代)’라고 불렀다. 고도성장기의 혜택을 누리고 후세대에 엄청난 빚만 떠넘긴 세대라며 빈정거리는 것이다. 풍요한 고령 세대를 가난한 현역 세대가 부양하는 모델이 제대로 작동할 리 없었다.
일본의 행보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편치 않다.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의 위기를 맞은 첫 국가가 일본이라면 한국은 그 길을 가는 두 번째 국가이기 때문이다. 속도는 한국이 훨씬 빠르다. 합계출산율이 5.0명에서 2.1명으로 떨어지기까지 일본은 31년 걸렸는데 한국은 19년에 불과했다. 2050년이면 일본을 추월해 세계에서 고령자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될 전망이다. 어둡기만 한 일본의 오늘은, 과연 피할 수 없는 한국의 내일이 될 것인가.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