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스퀘어, SK텔레콤, SK하이닉스 등 SK그룹 산하 정보통신기술(ICT) 3사가 연합체를 구성했다. 그간 개별로 추진한 신사업 투자·통신·반도체 사업을 융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3사는 1조원 규모 투자 자금을 마련해 반도체·AI·메타버스·블록체인 분야에도 함께 투자한다.

혁신산업에 1조원 투자

SK스퀘어·SK텔레콤·SK하이닉스는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기업은 이달부터 ‘SK ICT 3사 시너지 협의체’를 운영한다. 3사간 연구개발(R&D) 협력, 공동 투자, 글로벌 진출을 논의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3사 시너지 협의체엔 박정호 SK스퀘어·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 유영상 SK텔레콤 사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이 참여한다. 박 부회장은 “반도체가 정보통신기술(ICT)에 전반적으로 융합되고 있는 시기”라며 "투자회사, 통신사, 반도체 회사의 시너지 협의체를 만드는 게 향후 10년간의 변화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3사는 혁신 산업에 투자하기 위해 1조원 규모 펀드도 조성한다. 연내 해외 투자 거점을 마련해 글로벌 투자자본을 조성·운영한다. 반도체를 비롯해 인공지능(AI)·메타버스·블록체인 분야에서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에 투자한다. 이를 통해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가 외부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SK스퀘어는 투자전문기업으로서 투자 실적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인수합병(M&A)도 적극 나설 전망이다. 광폭 투자를 통해 중장기적으로는 유망 기업을 유리한 조건에 인수하는 기회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은 “AI, 메타버스, 5G 분야 내 기술혁신에 따른 변화에 적극 대응해 올해를 SK ICT 연합의 미래 10년을 준비하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AI반도체 기업 미국에 공동 설립

3사는 총 800억원을 투입해 미국에 AI반도체 기업 사피온(SAPEON Inc.)을 설립한다. 3사 협의체가 협업을 구체화하는 첫 사업이다. SK텔레콤이 전체 지분의 62.5%를 맡았다. SK하이닉스가 25%, SK스퀘어가 12.5%만큼 투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800억원은 시드머니(초기투자액)으로, 외부 투자 유치 등을 통해 기업 크기를 지속해 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기술 시장 미국에 근거지를 마련한 사피온은 SK의 AI 반도체 사업을 확장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맡는다. SK텔레콤은 앞서 자체 기술에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로직 등을 접목해 AI 반도체 ‘사피온’을 개발했다. 지난 4일엔 사내 AI 반도체 사업 부문을 떼어내 신설법인 ‘사피온코리아’로 독립시켰다. 사피온코리아는 사피온의 자회사로 편입돼 한국과 아시아 지역 사업을 담당하게 된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미국에 법인을 마련한 것은 명실 상부 글로벌 기업으로서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자 하는 ‘인사이드 아메리카’ 전략”이라고 했다. SK텔레콤이 2017년부터 AI 반도체 개발을 준비했고, 자체 AI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AI 반도체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게 SK텔레콤 등의 설명이다.

SK ICT 3사는 글로벌 ‘빅테크’가 사피온의 주 고객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미국에 본체 법인을 세우면 반도체 개발 인력 확보, 외부 투자 유치도 보다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피온을 두고는 3사가 주력분야를 나눴다. SK텔레콤은 사피온 기술 개발을 주도한다. 5G·AI 분야에서 축적한 R&D 역량과 서비스 경험을 바탕으로 차차 사피온 제품군을 데이터센터용, 자율주행 전용 등으로 늘릴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강점이 큰 메모리 반도체 제조 기술로 AI 반도체 사업 시너지를 모색한다. 투자전문기업 SK스퀘어는 SK텔레콤과 전략적·재무적 투자자 공동 유치에 나선다.

"인텔 낸드 인수, 값어치 한다"

이번 발표로 SK하이닉스는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에다 낸드플래시, AI반도체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됐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AI는 SK하이닉스의 수많은 고객사가 이미 진출한 사업 영역이고, 최근 사피온과 협업을 해보니 괜찮은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없이 투자했다"며 “표준화된 메모리 영역을 넘어 지능화된 메모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피온과 같은 AI 반도체 사업자와도 협업을 해야 혁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는 자체적으로도 ‘인사이드 아메리카’ 전략을 실행한다. 이 사장이 직접 이끄는 관련 사업 조직을 신설한다. 미주 R&D센터도 건립한다.

이날 이 사장은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인수에 대해 “인수 가격이 결코 비싸지 않았고, 중국 당국이 내세운 합병 조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라고 자평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부터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90억 달러에 인수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작년 말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아 각국 승인을 완료했고, 인수 1차 대금을 지불한 상태다.

이 사장은 “인텔 낸드 인수는 작년 12월 말에 클로징(완료)됐고 이후 조직을 좀 더 들여다볼 시간이 있었다”며 “인텔이 미국에 두고 있는 엔지니어 1500여명의 역량에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중국 당국의 조건부 합병 허가에 대해 노종원 SK하이닉스 사업총괄 사장은 “중국 고객에게 특정 가격 이상으로 제품을 팔지 않고, 중국 기업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에서 공급량을 확대하는 등의 조건을 걸었다”며 “일반적인 합병 조건이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박정호 부회장은 "그간 SK하이닉스가 메모리 회사로서 원가 절감에 힘쓰고, 미세 공정을 고도화하는 게 생존의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다원화된 시대에서 기술을 융합해 고객에게 맞는 제품을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

기업가치 시너지 도모

SK스퀘어·SK텔레콤·SK하이닉스는 이번 연합체 구성이 3사 기업가치를 높일 것으로도 보고 있다. 협업을 통해 고도화한 기반 기술을 신사업에 적용해 비즈니스 덩치를 키우고, 이를 통해 투자 수익을 내 연구개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정립한다는 구상이다.

박정호 부회장은 "SK ICT 연합이 서로 힘을 모아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도약하고 혁신하는 한 해를 만들 것"이라며며 "글로벌 반도체·ICT 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을 갖고 대한민국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SK스퀘어는 이날 최근 투자한 가상자산거래소 코빗과 연계해 글로벌 블록체인 신사업에 진출하고, SK텔레콤 메타버스 플랫폼 '이프랜드'에 블록체인 기반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에도 시너지를 내겠다고 밝혔다. SK스퀘어는 작년 1분기 기준 총 26조원 규모로 추산된 SK스퀘어의 순자산가치를 2025년까지 세 배인 75조원으로 키우는 게 목표다.

라스베이거스=구민기 기자 kook@hankyung.com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