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을 두고 산업계 안팎에서 “도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산업계에 미칠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도 불구하고 공청회는 물론 의견 청취 등의 절차가 없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라는 이유로 임기 말에 너무 서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기업의 인권 침해를 법으로 막는 것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한 건 2018년이다. 이른바 ‘항공사 오너 갑질’ 사건을 계기로 기업에 의한 인권 침해 방지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김오수 법무부 차관(현 검찰총장) 주도로 ‘기업인권경영 표준안 도입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듬해 법무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기업 인권경영 표준지침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지만 이를 확정하진 않았다. 법무부가 인권정책기본법을 제정하겠다는 입장을 처음 밝힌 건 2020년 11월이다. 이후 이듬해인 작년 6월 법안을 입법예고했고, 12월 말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주요 이해당사자인 기업들이 배제됐다는 점이다. 공청회는 물론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 대한 의견조회 절차가 생략됐다. 경영계 관계자는 “기업에 민감한 내용을 담은 법안을 이렇다 할 설명 없이 진행했다는 걸 납득하기 힘들다”며 “이 법이 향후 어떻게 적용될지 알 수 없는데, 현 정부에서 임기 말에 대못을 박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세계 각지에 공급망을 갖춘 주요 기업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 인권정책기본법 도입 일정과 방식이 내년에 공급망 실사 의무화법 시행에 들어가는 독일에 비해 지나치게 빠르고, 주먹구구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독일은 이 법 시행에 앞서 기업들에 대한 모니터링만 4년을 했다. 2016년 국가인권계획 수립 당시 ‘2020년까지 임직원 500명 이상 기업 중 50% 이상이 자발적으로 인권 보호를 하지 않으면 공급망 실사법 도입을 검토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일찌감치 ‘대비하라’는 메시지를 준 셈이다.

이후 2020년 7월 독일 외무부가 시행한 설문에서 참여 기업 중 22%만 “국가인권계획을 실행하고 있다”고 응답하자 예고한 대로 실사법 추진에 나섰다. 작년 6월 독일 연방의회에서 승인한 뒤에도 1년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을 줬다.

최진석/김진성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