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英 OBR 같은 독립 재정위원회 필요하다
2020년도 기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를 포괄한 일반정부 부채(D2)는 945조1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34조4000억원 증가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50조원을 쓰겠다” “100조원을 쓰겠다” 돈풀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무리 재정이 정치경제의 산물이라고는 해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건전재정관리는 난제 중 난제가 돼 가고 있다. 정치인이 득표를 극대화하려는 행태(vote-maximizing assumption)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종국엔 건전재정관리의 책임은 오롯이 재정당국의 몫이 되고 만다. 재정당국과 정치권이 샅바싸움을 하는 근본 이유 중 하나다.

문제는 저출산 및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기존 재정압박 요인에 더해 탄소중립 추진 등 환경 관련 요인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 재정운영 관점에서 탈피해 장기적 관점에서 건전재정관리에 나서야 한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마냥 재정확장 정책을 펼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과정에서 건전재정관리는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정부는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재정준칙 시행 및 사회보험재정 안정화 추진을 공식화했다. 또 건전재정관리 차원에서 다양한 재정제도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정준칙이 시행된다면, 재정준칙 준수 여부 등을 관리 감독할 독립적인 재정위원회 설치를 논의해 나가야 한다. 재정준칙과 재정위원회의 관계는 규범과 규범의 구속력을 담보하는 관계다.

재정위원회는 설치 운영방식에 따라 실효성이 달라진다. 관건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담보하되, 책임성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를 고려하는 데 있다.

재정당국과 국회(예산정책처), 한국은행, 감사원 등 재정 관련 기관의 유기적인 협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우선 이들 기관의 조직과 권한 등을 파악하고, 사전 직무체계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재정책임성과 재정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많은 기능과 권한을 갖고 있는 기관은 정부(기획재정부)다. 국회가 결산심의를 통해 정부를 감독·통제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 통제수단은 되지 못한다. 이를 고려할 때 국회와 정부라는 이원적 관계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재정위원회가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은 대통령 소속 기관이라는 이유로 의심과 우려를 받을 수 있고, 국회예산정책처가 기재부의 재정활동을 감독·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재정위원회는 재정준칙 이행 여부 등을 객관적·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 내지 절차를 명확히 규율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미래에 대한 예측·전망과 예산사업의 성과에 대한 사후평가, 재정준칙의 준수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 정부와 국회에 대한 권고, 자문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즉, 재정위원회는 감독기구로 정치적인 채찍질이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평가 보고서를 정부와 국회에 매년 제출함으로써 건전재정의 근간을 다져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영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영국은 재정분석 및 재정준칙 감시기구로 2010년 예산책임청(OBR)을 설립했다. OBR은 연 2회 이상 재정 및 경제전망, 연 1회 이상 전년도 전망의 정확성 평가, 재정 지속가능성 분석 등을 수행한다. 특히 OBR은 분석 및 예측, 평가(방법론 포함)에 있어 완전한 독립성이 보장되는 구조로 객관성,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재정준칙 이행과 건전재정관리 수단으로 영국의 OBR과 같은 독립적 재정위원회 설치를 적극 고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