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2022년, 개와 늑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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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급수로 변하는 大전환기에
빠르게 다가오는 미지의 미래는
친근한 개일까, 위험한 늑대일까
세계가 사활 걸고 달리는데
5년 또 시행착오로 허송하면
늑대 아닌 호랑이가 덮칠 것
오형규 논설실장
빠르게 다가오는 미지의 미래는
친근한 개일까, 위험한 늑대일까
세계가 사활 걸고 달리는데
5년 또 시행착오로 허송하면
늑대 아닌 호랑이가 덮칠 것
오형규 논설실장
19세기 문턱, 인류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산업혁명으로 한껏 기대에 들떠 있을 때 토머스 맬서스가 찬물을 끼얹었다. 식량은 산술급수(1, 2, 3, 4, 5…)로 늘어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1, 2, 4, 8, 16…)로 증가해 항구적 빈곤과 정체 상태(맬서스 함정)에 빠질 것이란 그 유명한 인구론이다. 그의 예측은 빗나갔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인구폭탄론’이 대세였다.
저출산·고령화가 뉴노멀이 된 지금은 거꾸로 인구가 줄까 봐 우려한다. 하지만 진짜 걱정은 인구 외에 모든 환경이 기하급수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대(大)전환기다. 한계비용을 제로(0)로 만든 강력한 포식자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파괴적 혁신’으로 기존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추세를 10년 앞당겨놨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황혼을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멋들어지게 비유했다. 어스름한 황혼녘에는 저기 보이는 짐승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듯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내며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에게 과연 친근한 개일까, 위험한 늑대일까.
미래는 늘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비극이 예정돼서가 아니라 어떻게 전개되고 귀결될지 알 수 없어서다. 200년 전, 뭔지 모를 세상 변화의 공포감이 러다이트 운동과 《프랑켄슈타인》(1818)으로 표출됐듯이, 상상을 초월한 융복합 기술이 세상을 뒤흔드는 지금의 불확실성은 기대보다는 끝 모를 불안감을 안긴다.
지난주 ‘CES 2022’를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데려다 놓은 듯하다. ‘모바일 이후’ 세계 주도권을 놓고 인공지능(AI) 로봇 메타버스의 혁신 경쟁이 불붙었고, 어제의 전자회사가 오늘은 자동차회사가 되고, 헬스케어와 푸드테크가 삶을 바꾸고, 우주와 가상공간까지 인류 활동영역이 무한 확장한다. ‘변화를 거부하다간 변화당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지구촌 곳곳에서 21세기를 더 이상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사건의 연속이다. 홍콩에서, 미얀마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듯하다. 여기에다 탄소중립, 기술패권, 공급망 혼란, 원자재 대란 등 하나같이 버거운 난제들이 끊임없이 쌓여간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은 무한질주하고 있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사활을 걸고 죽어라 뛴다.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 된 테크노내셔널리즘(기술 민족주의)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붉은 여왕 효과’처럼 멈춰 있으면 뒤처지고 도태되는 세상이다.
기대보다 우려 속에 맞은 2022년 임인년, 우리에게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어떤 5년’을 선택할지 50일 남짓 남았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연일 비전과 공약을 쏟아내지만 그 내용이 요란할수록 더 공허하게 들린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을 내세우면서 ‘5대 강국, 소득 5만달러, 코스피 5000’을 무슨 수로 달성할지, 30년간 추세적으로 내리막인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4%로 끌어올린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런 식이면 비전이 아니라 환상이자 허상에 가깝다. 그러니 “이왕 쓰는 김에 더 쓰지 그랬냐”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남들 다 뛰니 무조건 달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위치와 좌표를 냉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망망대해를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선진국에 진입했다지만 우리만의 초격차가 얼마나 있는가, 지난 5년간 꼬일 대로 꼬인 외교·안보를 어떻게 풀 건가, 신산업을 가로막는 기득권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나, 노동귀족의 천국이 돼버린 노동과 갈피를 잃은 교육은 어쩔 건가, 최고 스펙을 가졌어도 기회조차 없는 청년들을 어떻게 할 건가. 이런 질문들에 납득할 만한 해법을 갖지 못했다면 나라를 이끌 리더를 자처해선 안 된다.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인 소득주도성장, 초격차를 스스로 팽개친 탈원전 같은 억지와 오류를 더는 되풀이할 시간이 없다. 탈모 공약이나 멸치·콩에 정신 팔릴 때가 아니다. 5년을 또다시 시행착오로 허송했다간 늑대가 아니라 호랑이가 우리 미래를 덮칠 것이다.
저출산·고령화가 뉴노멀이 된 지금은 거꾸로 인구가 줄까 봐 우려한다. 하지만 진짜 걱정은 인구 외에 모든 환경이 기하급수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대(大)전환기다. 한계비용을 제로(0)로 만든 강력한 포식자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파괴적 혁신’으로 기존 질서를 송두리째 뒤엎는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추세를 10년 앞당겨놨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황혼을 프랑스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멋들어지게 비유했다. 어스름한 황혼녘에는 저기 보이는 짐승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칠 늑대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듯 희미하게 실루엣을 드러내며 빠르게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에게 과연 친근한 개일까, 위험한 늑대일까.
미래는 늘 불안하고 위험해 보인다. 비극이 예정돼서가 아니라 어떻게 전개되고 귀결될지 알 수 없어서다. 200년 전, 뭔지 모를 세상 변화의 공포감이 러다이트 운동과 《프랑켄슈타인》(1818)으로 표출됐듯이, 상상을 초월한 융복합 기술이 세상을 뒤흔드는 지금의 불확실성은 기대보다는 끝 모를 불안감을 안긴다.
지난주 ‘CES 2022’를 보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데려다 놓은 듯하다. ‘모바일 이후’ 세계 주도권을 놓고 인공지능(AI) 로봇 메타버스의 혁신 경쟁이 불붙었고, 어제의 전자회사가 오늘은 자동차회사가 되고, 헬스케어와 푸드테크가 삶을 바꾸고, 우주와 가상공간까지 인류 활동영역이 무한 확장한다. ‘변화를 거부하다간 변화당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새삼 일깨운다.
지구촌 곳곳에서 21세기를 더 이상 낙관할 수 없게 하는 사건의 연속이다. 홍콩에서, 미얀마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듯하다. 여기에다 탄소중립, 기술패권, 공급망 혼란, 원자재 대란 등 하나같이 버거운 난제들이 끊임없이 쌓여간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은 무한질주하고 있다. 그냥 뛰는 게 아니라 사활을 걸고 죽어라 뛴다. 정부와 기업이 한 몸이 된 테크노내셔널리즘(기술 민족주의)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됐다. ‘붉은 여왕 효과’처럼 멈춰 있으면 뒤처지고 도태되는 세상이다.
기대보다 우려 속에 맞은 2022년 임인년, 우리에게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어떤 5년’을 선택할지 50일 남짓 남았다. 유력 대선 후보들은 연일 비전과 공약을 쏟아내지만 그 내용이 요란할수록 더 공허하게 들린다. 억강부약(抑强扶弱)을 내세우면서 ‘5대 강국, 소득 5만달러, 코스피 5000’을 무슨 수로 달성할지, 30년간 추세적으로 내리막인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4%로 끌어올린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이런 식이면 비전이 아니라 환상이자 허상에 가깝다. 그러니 “이왕 쓰는 김에 더 쓰지 그랬냐”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남들 다 뛰니 무조건 달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이 처한 위치와 좌표를 냉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망망대해를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선진국에 진입했다지만 우리만의 초격차가 얼마나 있는가, 지난 5년간 꼬일 대로 꼬인 외교·안보를 어떻게 풀 건가, 신산업을 가로막는 기득권 진입장벽을 허물 수 있나, 노동귀족의 천국이 돼버린 노동과 갈피를 잃은 교육은 어쩔 건가, 최고 스펙을 가졌어도 기회조차 없는 청년들을 어떻게 할 건가. 이런 질문들에 납득할 만한 해법을 갖지 못했다면 나라를 이끌 리더를 자처해선 안 된다.
미국 작가 커트 보니것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다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은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인 소득주도성장, 초격차를 스스로 팽개친 탈원전 같은 억지와 오류를 더는 되풀이할 시간이 없다. 탈모 공약이나 멸치·콩에 정신 팔릴 때가 아니다. 5년을 또다시 시행착오로 허송했다간 늑대가 아니라 호랑이가 우리 미래를 덮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