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트로이트만큼 영욕이 교차한 도시도 드물다. 수륙교통이 발달한 이곳은 1900년대 ‘자동차산업의 성지’로 불렸다.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등 3대 자동차회사 공장이 몰려 있어 인구가 185만 명까지 불어났다.

하지만 1970년 오일쇼크로 도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연료 효율이 높고 값싼 일본 소형차가 수입되자 미국 자동차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실업자가 늘면서 도시가 슬럼화됐고 빈곤율이 치솟았다. 2009년 GM의 파산보호 신청에 이어 2013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비참한 도시 1위’(포브스)에 꼽혔다.

그랬던 쇠락의 도시가 최근 ‘전기차 천국’으로 변신하고 있다. GM과 포드가 2025년까지 각각 350억달러, 250억달러를 들여 모든 생산라인을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다. 글로벌 4위 자동차 업체 스텔란티스는 새 공장을 완공했다. 30년 만에 신설된 공장이다.

자동차 부품기업들도 전기차 라인으로 갈아타고 있다. 내연기관용 대신 전기모터와 배터리용 부품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미래차 육성에 맞춰 글로벌 업체의 투자를 유치하며 지원을 늘리고 있다. 덕분에 일자리가 늘면서 도시에 활기가 넘치고 있다.

이 같은 도시의 흥망성쇠는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스페인의 제철·조선 중심지였던 빌바오는 1980년대 이후 쇠퇴를 거듭하다 1997년 구겐하임미술관을 유치하면서 기사회생했다. 1억달러를 들인 미술관에 첫해부터 130만 명이 몰려 1억60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폐허의 공업도시가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거듭난 것이다.

‘말뫼의 눈물’로 유명한 스웨덴의 말뫼는 첨단 정보기술과 바이오산업 도시로 발돋움했다. 옛 조선소 터에 청정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뉴타운을 개발하고, 크레인이 있던 곳에 북유럽 최고 높이의 랜드마크 건축물을 세워 도시의 새로운 상징으로 만들었다.

영욕의 역사를 딛고 부활한 도시들은 인재와 혁신, 미래산업 육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 도시의 메커니즘과 인류의 미래를 연구한 에드워드 글레이저 하버드대 교수도 이 점을 강조한다. 그는 《도시의 승리》에서 “성공적인 도시는 사람과 미래기술, 아이디어의 핵심을 한 곳으로 끌어들이는 혁신의 발전소”라고 했다. 도시의 질적 성장은 국가 번영의 지렛대이기도 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