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국민연금의 '호가호위' 이제 그만둬야
며칠 전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경제단체 7곳이 공동성명을 내고, 국민연금의 주주대표소송 확대 움직임을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주주대표소송이란 회사의 이사가 잘못을 했는데, 회사가 그 책임 추궁을 게을리하면 주주가 회사 대신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국민연금은 여러 회사의 주주이기 때문에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가 주주대표소송 제기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를 국민연금공단 안의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자 경제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주목할 점은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위 모두 국민연금공단 내 조직이고, 심지어 수탁위는 기금운용본부 산하 위원회인데도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수탁위는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 등을 검토·결정하기 위해 설치된 기구이기 때문에 주주권 행사 맥락에서 주주대표소송을 다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불거진 원인은 첫째 수탁위가 2018년 기존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확대 개편된 배경이 현 정부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고, 둘째 수탁위 전문위원이 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다 보니 마치 최저임금위원회처럼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인식을 받는다는 데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고객의 돈을 맡아 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큰 집의 관리를 맡은 충직한 집사(스튜어드)의 마음가짐으로 따라야 하는 행동 지침이다. 구체적으로는 기관투자가가 투자 대상인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해 주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는 내용이다. 언뜻 봐서는 좋은 내용이고, 실제로 적극적인 활동을 지향하는 행동주의 펀드가 주목받기도 한다. 최근에는 환경·사회·지배구조 차원에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ESG 붐까지 일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국내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기 전까지 기관투자가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다른 주주들의 의사결정에 묻어가는 방식을 택해 왔다. 투자하는 많은 기업의 개별 사안에 대해 일일이 검토하고 표를 행사할 실리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감지될 때 지분을 팔면 그만인 것도 중요한 이유다.

게다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민간 기관투자가와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일단 민간 기관투자가의 활동은 고객 선택을 바탕으로 하는 데 비해 국민연금은 국민이 선택해서 가입한 것이 아니다. 국민연금이 개인 마음에 들지 않게 기업에 간섭해도 국민연금에 가입된 개인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국민연금의 주주활동을 정의롭게 느끼지만, 다른 사람은 반대로 느끼거나 “그저 수익만 잘 내면 되지, 왜 돈 써가며 저러냐”고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국민의 소중한 자금을 등에 업고 국민연금이 위세를 부려도 정작 국민은 제지할 수 없는데, 정치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우려를 받는 수탁위에 칼자루를 넘기는 것은 호랑이여야 할 국민이 호구가 되는 격이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의 또 다른 문제는 국민연금기금의 위탁을 받아 운용하려는 기관투자가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 규모는 전 세계 공적연금 중 3위일 만큼 막대하다. 1위는 일본 공적연금펀드, 2위는 노르웨이 국부펀드다. 한국은 2015년 3위에 오른 이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많은 돈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내 주식의 경우 45~65%를 민간 운용사에 위탁한다.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자율 지침이라고 강조하지만, 얼마나 많은 운용사가 의결권 행사를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는 비용을 치러가며 자의가 아니라 타의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따르고 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필요하다고 치자. 세계 유수 공적연금들도 의결권 행사를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수탁위의 정치성을 제거해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다. ‘용돈 연금’이란 비아냥을 받아도 국민연금은 국민의 기본 저금통이니 그 정도는 해야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