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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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스페인 독감이 잦아들자 미국 시애틀에선 대규모 노동 운동이 전개됐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자 노동자들은 긴 근로시간과 열악한 급여 조건을 개선해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시애틀의 노동 거부 운동이 100년이 지난 지금 미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노동자들이 일터 복귀를 거부하면서다. 이들의 안식처는 미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안티워크’다. 주축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일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허탈감, 팬데믹 후 바뀐 가치관, 노동가치 상승 등의 영향으로 ‘노동 거부’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들은 열악한 근로 환경을 참고 견디던 이전 세대와 달리 불합리한 직장 문화에 일침을 가하고 서슴없이 사표를 던진다. 소비 여력이 줄어도 개의치 않는다.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선 젊은 세대의 무력감을 들 수 있다. 포브스는 미국의 MZ세대를 근대 역사상 자신의 부모보다 재정적 풍족함을 느끼지 못한 첫 세대라고 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40대 초반이던 1989년 이들의 평균 자산은 11만3000달러였다. 하지만 2019년 밀레니얼 세대의 순자산은 9만1000달러로 20% 가까이 줄었다. 젊은 세대는 가질 수 없는 부를 향해 달려가는 것 대신 반대 목소리를 내는 쪽을 택했다.

팬데믹은 MZ세대에 회사 문턱을 벗어날 계기를 마련해줬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일과 삶의 경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팬데믹은 그동안 당연했던 사회활동과 인간관계를 위험한 것으로 바꿨다. 사람과 만나는 활동 자체가 건강을 위협하는 행동이 되면서다.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젊은 세대의 노동 거부 움직임을 부채질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언제든 퇴사해도 다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 탓에 쉽게 직장을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전환기를 맞은 미국 등에선 새로운 일자리도 늘고 있다. 비대면 배달 사업이 확대되면서 급증한 ‘긱 노동자(단기 계약직)’도 그중 하나다. 팬데믹 경제에서 완전히 회복해 수요와 공급 간 미스매치가 완화되면 장기적으로 인력 부족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상존하는 이유다.

팬데믹이 끝난 뒤 노동 가치는 어김없이 상승했다. 일할 사람이 귀해져서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인구 3분의 1이 줄었다. 이후 농민과 상인의 지위는 급등했다. 코로나19도 마찬가지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자 기업들은 임금을 올렸다. 8만~9만달러였던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 신입 직원 평균 연봉은 10만달러를 넘어섰다. 아마존 등은 직원들의 대학등록금을 지원하는 등 재교육 기회를 줬다.

하지만 일자리는 좀처럼 채워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0월 기준 사람을 구하지 못해 비어 있는 일자리는 미국에서만 1103만 개에 달했다. 작년 10월 기준 미국 내 이직은 1년 전보다 54% 증가했다. 링크트인에 따르면 Z세대 근로자의 이직은 80%, 밀레니얼 세대 이직은 50% 급증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