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환자 면역거부반응 일으키는 세포 찾았다 [최지원의 사이언스톡(talk)]
장기이식을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하는 요소는 면역반응이다. 다른 사람의 장기가 들어오면 우리 몸은 ‘적’이라고 판단해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런 면역거부반응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기이식을 받은 환자는 면역억제제를 수십 년간 복용해야 한다.

백혈병, 림프종 등 혈액암 환자의 경우 증상이 악화되면 적혈구, 백혈구 등을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게 된다. 이 경우 면역거부반응과 유사한 이식편대숙주병이 발생할 수 있다. 이식편대숙주병은 이식된 조혈모세포에서 생성된 면역세포가 이식 받은 사람의 세포를 공격해 발생한다. 발열, 발진, 간 기능 이상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중증 폐질환, 시력 손상 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지난 10일 특정 면역세포를 제거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자 이식편대숙주병이 큰 폭으로 줄었다는 임상 시험 결과를 국제학술지 ‘임상 종양학 저널’에 발표했다. 문제의 세포는 T세포의 한 유형인 ‘미접촉 T세포(naive Tcell)’였다.

연구에 따르면 미접촉 T세포를 제거하자 약 7%의 환자에서 이식편대숙주병이 발병했다. 조작을 가하지 않은 조혈모세포를 이식할 경우 이식편대숙주병이 발병할 확률은 30% 이상이다.

연구진은 3개의 임상 2상 시험에서 급성백혈병 환자 138명을 모집했다. 환자와 면역학적으로 일치하는 기증자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채취한 뒤, 미접촉 T세포를 제거했다. 환자들은 방사선 치료 및 화학 요법을 받은 뒤 조혈모세포를 이식받았다. 연구진이 조혈모세포 이식 환자를 4년간 추적 관찰한 결과, 이식편대숙주병의 발병 확률은 4분의 1 가량으로 줄었다.

이식편대숙주병을 줄이기 위해 조혈모세포에서 T세포를 제거해 이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T세포가 면역 체계의 핵심 세포이기 때문에 암세포 제거에 불리하고, 재발 위험이 높다. 환자의 몸에 백혈구가 남아서 이식된 조혈모세포를 공격하는 ‘생착 부전’이 일어날 위험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마리 블리클리 워싱턴대 교수는 “T세포를 제거하지 않고 이식편대숙주병의 위험이 있는 상태와 모든 T세포를 제거하고 암 재발의 위험이 있는 상태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로 미접촉 T세포만 제거해도 이식편대숙주병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미접촉 T세포는 아직 외부 물질(항원)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T세포다. 코로나19와 같이 우리 면역 체계가 그간 보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가 침입하게 되면, 미접촉 T세포의 수가 매우 중요하다. 미접촉 T세포만이 새로운 병원체에 반응해 면역반응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어서다.

블리클리 교수는 “미접촉 T세포도 T세포의 유형이기 때문에 제거 시 혈액암 재발,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아지는지 추가 연구를 통해 확실히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