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의 채권시장 view] 정부의 돈 뿌리기와 적자국채 발행 부담
연초부터 추경 예산편성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국내 채권금리가 급등했다. 지난 10일 국고채 3년 만기물 금리는 12월 말 대비 0.26%포인트 오른 연 2.06%를 기록했고 10년 금리도 0.22%포인트 상승해 연 2.48%까지 뛰어올랐다. 오는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후보는 설 연휴를 전후해 25조~30조원의 추경 예산을 편성하자고 주장했고 민주당 원내대표도 추경에 속도를 내겠다고 답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추경예산 편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채권시장에선 정부의 적자국채 발행에 따른 물량 부담 우려가 금리를 더 밀어올렸다.

홍 경제부총리는 "약 14조원의 추경을 계획 중이며 재원은 대부분 적자국채 발행으로 충당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난해 초과세수가 약 10조원 가량 발생했으나 이를 곧바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초과세수는 결산 시점인 올해 4월 이후 가능하다. 다만 연간 14조원 내외의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국채 시장에 부담을 주는 규모는 아니다. 미 국채금리 상승폭 등 대외변수를 고려해도 일주일새 0.2%포인트가 상승한 것을 설명하기는 부족하다.

금리가 예상보다 크게 오른 것은 시장 참여자들이 "이번 추경은 시작일 뿐"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돈 풀기'를 시작해 폭주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작년 12월 중 연 1.70% 초반까지 낮아진 이후 0.3%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지속적인 본원통화 확대와 적자국채 발행은 궁극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중립 기준금리 수준 자체를 상향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하고 있다.

양당 중 어느 쪽이 대통령에 당선된다고 해도 올해 2차 추경 예산 편성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에게 약 50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전국민 재난 지원금, 청년기본소득, 만 18세까지 아동 청소년 수당 등 다양한 재정 공약을 내세웠다. 양당 후보의 공약을 감안한 올해 추경 규모는 적어도 30조원 이상이 될 전망이다.

[이미선의 채권시장 view] 정부의 돈 뿌리기와 적자국채 발행 부담
채권시장은 정부와 국민 모두 반복적인 추경과 보조금 지원에 익숙해지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향후 추경예산 편성이 일상이 되면 통화량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으로 국내 경제가 연간 약 1% 위축됐을 때 편성된 추경 예산 규모는 67조원이었고, 작년 국내 경제가 4% 성장했을 때에도 50조원의 추경이 편성됐다. 올해는 3% 내외의 양호한 경제 성장이 예상됨에도 새해가 밝자마자 14조원의 추경 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이런 점에 비춰보면 향후 추경 예산이 정치적으로 빈번하게 활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기본소득 정책은 상당한 재원이 소요되며 초기에는 세수만으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워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하다. 기본소득 도입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추정에 따르면 2023년부터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면 연간 186조6000억원이 든다.

재원을 마련할 방법(한국사회전환 리얼리스트들의 기본소득 로드맵, 2021년 8월)으로는 토지보유세, 탄소세, 시민소득세, 각종 세금공제축소안 등을 제시했다. '주권화폐'도 재원마련 방법 중 하나로 논의된다. 전통적 화폐론에서는 화폐 발행이 금 준비고(Gold reserve) 또는 국채 발행을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주권화폐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쪽에서는 화폐가 국내총생산(GDP)에 기반해 발행되며 금 준비고, 국채 발행을 전제로 하지 않고 국가가 주권적으로 창조할 수 있다고 본다. 경제의 실제 산출량을 넘지 않도록 화폐발행 규모를 제한하면 인플레이션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GDP가 위축될 때마다 총수요를 지원하기 위한 명목으로 화폐 발행이 늘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재정정책 방향, 법정 화폐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원화는 기축 통화가 이 아니기 때문에 환율에 민감하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쉽게 설명하면 통화량을 무분별하게 늘리면 한국 경제가 '베네수엘라행 급행열차'를 탈 가능성이 높다. 정부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돈을 찍어낸 베네수엘라는 지폐가 휴지 조각이 됐다.

기본소득을 전격 도입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재 국내 선거 결과에 따라 상당 규모 적자국채 발행 가능성이 있고,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후행적으로 기준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하면서 버블 발생 위험을 낮추고 기대 인플레이션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 뿐이다.

[이미선의 채권시장 view] 정부의 돈 뿌리기와 적자국채 발행 부담
한국은행은 지난 14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작년 8월 이후 세 번째 금리 인상이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 중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 11월 2.0% 내외로 전망했던 것과 비교해 대폭 상향 조정됐다. 잠재성장을 웃도는 성장과 확장재정기조, 예상보다 높은 물가 등은 한은의 점진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정당화시키는 재료들이다.

한국은행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중립금리 수준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중립기준금리는 모든 노동력과 가용자본이 투입되었을 때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는 중립적인 금리를 의미한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가운데 확장재정 기조가 장기화될 경우 해당 경제에 적합한 중립 기준금리도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