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야스 외길' BYC 창업주 한영대 前회장 별세…향년 10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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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한흥메리야스' 설립
2018년 경영 일선서 물러나
2018년 경영 일선서 물러나
속옷업체 비와이씨(BYC) 창업주 한영대 전 회장(사진)이 지난 16일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1923년 전북 정읍에서 어난 한 전 회장은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어린 나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광복 1주년이던 1946년 8월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했다.
광복 직후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약 52만 매에 불과해 국민 37.6명당 내의 1매꼴로 보급되고 있었다. 여기에 착안해 추위에 떨지 않도록 메리야스 내의 생산에 집중했다.
그는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도 탄생시켰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편직기의 성능과 수를 증설하는 등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일화가 전해진다.
고인은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물 내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다. 대·중·소 3단계로 구분했던 속옷 사이즈도 4단계(85·90·95·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BYC는 전성기에는 전세계 78개국에 8000만 달러 어치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1996년 당시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BYC)로 변경했다.
과거 미쓰비시 상사가 BYC 제품의 품질을 높이 사 일본으로 수출을 제안했지만 한 전 회장이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것은 업계에 잘 알려진 일화다. 건강상의 이유로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
1923년 전북 정읍에서 어난 한 전 회장은 포목점 점원을 시작으로 자전거포, 미싱조립 상점 등을 운영하며 어린 나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광복 1주년이던 1946년 8월15일 BYC의 전신인 '한흥메리야스'를 설립했다.
광복 직후 국내 연간 내의 생산량은 약 52만 매에 불과해 국민 37.6명당 내의 1매꼴로 보급되고 있었다. 여기에 착안해 추위에 떨지 않도록 메리야스 내의 생산에 집중했다.
그는 5개월의 제작 기간을 거쳐 '국산 1호 메리야스 편직기'도 탄생시켰다. 기계에 맞는 바늘이 없어 직접 숫돌에 양말기 바늘을 갈아 끼우는 등 어려움 속에서도 편직기의 성능과 수를 증설하는 등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일화가 전해진다.
고인은 국내 최초로 아염산소다를 활용한 표백기술을 개발해 백물 내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백양(白羊)' 상표를 출시했다. 대·중·소 3단계로 구분했던 속옷 사이즈도 4단계(85·90·95·100cm)로 나누는 등 제품 규격화와 표준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섰다.
BYC는 전성기에는 전세계 78개국에 8000만 달러 어치의 메리야스를 수출했으며 1996년 당시 사명을 백양에서 주식회사 비와이씨(BYC)로 변경했다.
과거 미쓰비시 상사가 BYC 제품의 품질을 높이 사 일본으로 수출을 제안했지만 한 전 회장이 "아직 수출할 만큼 우수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것은 업계에 잘 알려진 일화다. 건강상의 이유로 201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미경 한경닷컴 기자 capit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