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내 도로 금만 가도 점검하라니…공공기관 "다 막고 공사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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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재해' 가이드라인에 지자체·공공기관 대혼란
27일 시행…지자체 등 공공부문
사업장 수 아직 파악도 안 돼
'최종 책임자는 누구' 논란 여전
도급·용역·위탁 사업장 안전관리
기관장, 책임 피하려 손 놓을 수도
27일 시행…지자체 등 공공부문
사업장 수 아직 파악도 안 돼
'최종 책임자는 누구' 논란 여전
도급·용역·위탁 사업장 안전관리
기관장, 책임 피하려 손 놓을 수도
최근 한 공공기관에서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임직원 화상회의가 열렸다. 정부가 지난달 말 배포한 ‘중대시민재해 해설서’를 숙지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회의는 곧 정부 성토장으로 변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법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혼선이 왔다”고 토로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 공공 부문에서 이달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 곳은 지방자치단체 243곳과 지방공공기관 460곳(39%)이다. 지방공공기관 1177곳 중 490곳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으로, 법 시행일로부터 2년 유예를 받았다.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부터 법이 적용된다. 정부는 공공 부문의 중대재해법 적용 개별 사업장 수조차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워낙 적용 범위가 넓다 보니 대상을 취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새도 없이 법과 시행령을 제정했다”며 “정부 가이드라인을 법 시행 불과 한 달 전에 내놓은 것은 졸속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 대목에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범위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는데도 정부 가이드라인에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이 형사처벌에 근거한 것인 만큼 최대한 엄격하게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 교수는 “형법이 수반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 의무 주체를 명확히 특정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해석을 넓게 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가 소유하고 서울시축구협회가 운영하는 효창운동장의 경우 하도급을 준 환경미화업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면, 중대재해법으로는 서울시장과 서울시축구협회장, 하도급업체 대표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누가 사고 예방 주체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해 기관장들이 도급·용역·위탁에 대한 안전관리를 회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법이 모호한 상태에서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 위탁 사업장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는 반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을 정부 가이드라인이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해설서에는 ‘터널 노면 포장의 균열 신고 접수 시 긴급 안전점검, 보수보강, 이용 제한 조치 등 업무를 취하라’고 명기돼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현장을 무시한 지침이란 게 일선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포장 균열까지 이용 제한을 하면 전국 터널을 모두 폐쇄하라는 뜻”이라며 “도로에 싱크홀이 발생해 시민 생명이 위협받아도 터널 노면 때우러 달려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부실하게 제정된 중대재해법의 부작용으로 오히려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지금이라도 충분한 재논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수정/최진석 기자 agatha77@hankyung.com
이 회의는 곧 정부 성토장으로 변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임원은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법에서 헷갈리는 부분이 명확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혼선이 왔다”고 토로했다.
공공 부문 사업장 수도 파악 안 돼
오는 27일 시행을 앞둔 중대재해법의 주요 축인 중대시민재해와 관련해 지금이라도 보완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대시민재해는 그간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받아온 산업재해와 달리 참고할 판례가 없고 범위가 훨씬 넓은데도 불구하고 법과 시행령, 정부 가이드라인까지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는 지적이다.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방 공공 부문에서 이달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을 적용받는 곳은 지방자치단체 243곳과 지방공공기관 460곳(39%)이다. 지방공공기관 1177곳 중 490곳은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으로, 법 시행일로부터 2년 유예를 받았다.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부터 법이 적용된다. 정부는 공공 부문의 중대재해법 적용 개별 사업장 수조차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워낙 적용 범위가 넓다 보니 대상을 취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새도 없이 법과 시행령을 제정했다”며 “정부 가이드라인을 법 시행 불과 한 달 전에 내놓은 것은 졸속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책임자’ 법적 해석 논란
중대재해법상 공공 부문에서 혼선이 가장 많은 건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다. 정부 부처 장관→지자체장→지방공공기관장→도급·용역·위탁 사업자로 이어진 수직관계에서 사고 발생 시 책임과 안전 조치의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중대재해법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가진다’고 명시돼 있다. 이 대목에서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의 범위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의 의미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는데도 정부 가이드라인에 이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이 형사처벌에 근거한 것인 만큼 최대한 엄격하게 대상을 제한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게 중론이다. 정 교수는 “형법이 수반된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 의무 주체를 명확히 특정해야 하는데도 정부는 해석을 넓게 해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시가 소유하고 서울시축구협회가 운영하는 효창운동장의 경우 하도급을 준 환경미화업체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면, 중대재해법으로는 서울시장과 서울시축구협회장, 하도급업체 대표 중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누가 사고 예방 주체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해 기관장들이 도급·용역·위탁에 대한 안전관리를 회피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법이 모호한 상태에서는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 위탁 사업장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으려는 반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이드라인이 혼란 더 부추겨
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이 충분한 논의 없이 졸속으로 정해졌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공중이용시설에 교량도로 터널도로는 포함되고 일반도로는 제외되거나, 어린이집은 들어가고 유치원과 학교는 빠진 게 그런 사례다. 시외버스는 해당하지만 광역버스와 시내버스는 포함되지 않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다.중대시민재해 적용 대상을 둘러싼 현장의 혼란을 정부 가이드라인이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토교통부 해설서에는 ‘터널 노면 포장의 균열 신고 접수 시 긴급 안전점검, 보수보강, 이용 제한 조치 등 업무를 취하라’고 명기돼 있다.
이는 대표적으로 현장을 무시한 지침이란 게 일선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포장 균열까지 이용 제한을 하면 전국 터널을 모두 폐쇄하라는 뜻”이라며 “도로에 싱크홀이 발생해 시민 생명이 위협받아도 터널 노면 때우러 달려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조성일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부실하게 제정된 중대재해법의 부작용으로 오히려 안전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지금이라도 충분한 재논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수정/최진석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