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책임 안 지는 국정' 文정부 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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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위해서 불편 감수하는 게
'국가백년대계' 개혁의 핵심
당장의 '국민 눈높이' 눈치 보며
서둘러야 할 연금개혁 팽개치고
되레 평지풍파만 일으켜서야
이학영 논설고문
'국가백년대계' 개혁의 핵심
당장의 '국민 눈높이' 눈치 보며
서둘러야 할 연금개혁 팽개치고
되레 평지풍파만 일으켜서야
이학영 논설고문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핵심 지지 집단 내에서 ‘배신자’ 소리를 들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반미(反美)면 어떠냐”던 사람이 미국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 파병(派兵)을 결정하고, 제주도 남쪽 강정마을에 남중국해를 염두에 둔 해군기지를 짓기로 했을 때 친여 세력의 궐기가 하늘을 찔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면서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선언하면서까지 여권 내 반대론자들과 악전고투했다.
그를 향한 ‘변절자’ 공격은 임기 마지막 해까지 이어졌다.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탓이 컸다. 가입자들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도록 설계된 데 따른 조기 재원(財源) 고갈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G5’로 불리는 연금 선발국가(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평균(20.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험료율(9%)을 15.9%로 끌어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60%에서 50%로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47년께 국민연금이 바닥나고 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부터 반대가 거셌다. “더 많은 부담, 더 적은 혜택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정책”(노동자연대)이라는 등 핵심 정권 지지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목덜미를 잡힌 결과였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구조는 진보·보수를 떠나 나쁜 제도다. 후세대를 착취하는 연금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노 대통령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보험료율 인상을 포기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40%로 더 낮췄다. 더 내지 않겠다면 받는 금액을 더 줄이자는 수정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연금 고갈 예상 연도를 2060년으로 10여 년 늦췄다. 노 대통령이 중요 국사(國事)에서 ‘배신자’ 소리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게 국정 최종책임자의 도리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의 말마따나 올바른 국가지도자라면 개인의 ‘심정윤리’가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책임윤리’를 따라야 함을 고뇌한 결과가 아닐까.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의 이후 행보는 전혀 딴판이다. 국민연금 개혁 문제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예상보다 가팔라지면서 연금 고갈 시점이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경고가 줄을 잇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집권 초 전문가들로부터 국민연금 위기 타개책으로 보험료율을 12~15%로 올리는 방안이 제시됐을 때 그가 퇴짜를 놓으며 한 말에 그 까닭이 담겼다. “(요율을 높이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국민연금 운영의 최우선순위가 당장의 국민 여론일 뿐, 연금 재원 고갈 여부는 그다음 문제라는 선언이자 실토였다. 미래를 대비한 개혁은 현 세대의 불편과 양보를 전제로 한다는 게 상식이다. ‘국민 눈높이’를 들어 그 상식을 거부한 문 대통령은 이후 5년이 다 되도록 국민연금 개혁에 눈을 감고 있다.
국민 노후 생계안정을 위한 핵심 장치여서 ‘복지의 척추’로 불리는 연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속가능성 유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차기 선거에서 악재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연금 개혁을 단행했고, 각오했던 대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던 이유다.
이렇게 중요한 기금의 고갈 위기에 손 놓고 있는 것도 잘못인데, 문재인 정부는 한술 더 뜨는 조치까지 내놓으려고 한다. 기금 운용을 위해 주식 투자한 기업들의 경영을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소송까지 내기로 하면서 결정권을 사실상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맡기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금 개혁을 외면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짚어야 할 문제다.
권한이 있으면 책임이 따르는 게 세상사의 기본이다. 운용 성과에 아무 책임도 질 일 없는 사람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내주는 건 그런 기본을 거스른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들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고 경영을 위축시키는 등 평지풍파를 일으킬 게 뻔하다. 설상가상의 국민연금 운영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지지 않는 국정’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를 분명하게, 여러모로 보여준다.
그를 향한 ‘변절자’ 공격은 임기 마지막 해까지 이어졌다. 국민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탓이 컸다. 가입자들이 낸 돈보다 훨씬 많이 받도록 설계된 데 따른 조기 재원(財源) 고갈 문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G5’로 불리는 연금 선발국가(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평균(20.2%)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보험료율(9%)을 15.9%로 끌어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60%에서 50%로 낮추는 게 핵심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047년께 국민연금이 바닥나고 말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부터 반대가 거셌다. “더 많은 부담, 더 적은 혜택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복지정책”(노동자연대)이라는 등 핵심 정권 지지 세력의 완강한 저항에 목덜미를 잡힌 결과였다.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연금 구조는 진보·보수를 떠나 나쁜 제도다. 후세대를 착취하는 연금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노 대통령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보험료율 인상을 포기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을 40%로 더 낮췄다. 더 내지 않겠다면 받는 금액을 더 줄이자는 수정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그렇게 해서 국민연금 고갈 예상 연도를 2060년으로 10여 년 늦췄다. 노 대통령이 중요 국사(國事)에서 ‘배신자’ 소리 듣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은 그게 국정 최종책임자의 도리라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독일 철학자 막스 베버의 말마따나 올바른 국가지도자라면 개인의 ‘심정윤리’가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책임윤리’를 따라야 함을 고뇌한 결과가 아닐까.
‘노무현 정신 계승’을 내걸고 집권한 문재인 대통령의 이후 행보는 전혀 딴판이다. 국민연금 개혁 문제가 그 전형을 보여준다.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예상보다 가팔라지면서 연금 고갈 시점이 더 앞당겨질 것이라는 경고가 줄을 잇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집권 초 전문가들로부터 국민연금 위기 타개책으로 보험료율을 12~15%로 올리는 방안이 제시됐을 때 그가 퇴짜를 놓으며 한 말에 그 까닭이 담겼다. “(요율을 높이는 것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
국민연금 운영의 최우선순위가 당장의 국민 여론일 뿐, 연금 재원 고갈 여부는 그다음 문제라는 선언이자 실토였다. 미래를 대비한 개혁은 현 세대의 불편과 양보를 전제로 한다는 게 상식이다. ‘국민 눈높이’를 들어 그 상식을 거부한 문 대통령은 이후 5년이 다 되도록 국민연금 개혁에 눈을 감고 있다.
국민 노후 생계안정을 위한 핵심 장치여서 ‘복지의 척추’로 불리는 연금은 거의 모든 나라에서 지속가능성 유지에 가장 심혈을 기울인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차기 선거에서 악재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연금 개혁을 단행했고, 각오했던 대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던 이유다.
이렇게 중요한 기금의 고갈 위기에 손 놓고 있는 것도 잘못인데, 문재인 정부는 한술 더 뜨는 조치까지 내놓으려고 한다. 기금 운용을 위해 주식 투자한 기업들의 경영을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소송까지 내기로 하면서 결정권을 사실상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에게 맡기는 방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금 개혁을 외면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게 짚어야 할 문제다.
권한이 있으면 책임이 따르는 게 세상사의 기본이다. 운용 성과에 아무 책임도 질 일 없는 사람들에게 막강한 권한을 내주는 건 그런 기본을 거스른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들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고 경영을 위축시키는 등 평지풍파를 일으킬 게 뻔하다. 설상가상의 국민연금 운영은 문재인 정부의 ‘책임지지 않는 국정’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를 분명하게, 여러모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