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베토벤·모차르트 명곡들엔 공식이 있다
“매우 까다로운 작품이지. 지금껏 이 곡을 제대로 연주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 ‘고전적’이라는 표제가 뭘 의미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해….”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잔소리를 쏟아냈다. 현대 음악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고전주의 작곡가 요제프 하이든의 스타일로 쓴 교향곡 1번 ‘고전’을 제대로 연주하려면 ‘고전적’이 뭘 뜻하는지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면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구축했다는 고전주의란 과연 무엇일까.

[책마을] 베토벤·모차르트 명곡들엔 공식이 있다
《고전적 양식》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고전파 트로이카’가 어떻게 음악의 역사를 바꿨는지를 다룬 고전주의 음악 안내서다. 수많은 악보와 전문 용어가 쉴 틈 없이 등장하는 전문서이기도 하다. 책을 쓴 찰스 로젠(1927∼2012)은 하버드대, 시카고대, 옥스퍼드대 등에서 음악을 가르쳤던 유명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저술가다. 1971년 출간된 원저는 이듬해 미국도서상을 받는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고전파 3인방의 음악은 당대부터 널리 인정받았다. 1780년대 말 당대 유럽인들은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최고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1805년 베토벤은 유럽 전역에서 가장 앞서가는 작곡가로 존경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범인과의 우열은 절로 가려졌다.

그렇다면 빈 고전파 3인방이 이전 음악가는 물론 당대의 허다한 작곡가들과 구분되는 점은 무엇일까. 그들은 객관적인 동시에 개성을 드러낸 음악을 쏟아냈다. 형식 안에서 자유를 누릴 줄 알았고, 내적인 논리성과 극적인 효과를 동시에 그려냈다.

무엇보다 소나타 형식이 빈 고전파 작곡가들에게 견고하고도 화려한 집을 지을 토대를 제공했다. 소나타 형식은 으뜸조와 딸림조 사이의 관계를 이용해 극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작곡 방식이다. 하이든은 ‘옥스퍼드 교향곡’을 통해 소나타 형식을 거대하게 확장했다. 모차르트의 ‘프라하 교향곡’은 소나타 형식을 무기로 바로크 시대 오라토리오에 맞먹는 진지함과 장대함을 갖췄다.

소나타 형식은 오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는 C장조 서곡에 이어 G장조, E장조, C장조 순으로 진행된다. 피아노 소나타나 교향곡보다 규모가 큰 작품이지만 으뜸조-딸림조-먼 조성-으뜸조 해결이라는 소나타 미학이 반영됐다.

빈 고전파는 장르를 가리지 않고 탄탄한 구조를 갖춘 작품들을 연이어 선보였다. 고전 양식은 대칭적 패턴이 악절에 명료하게 주어지고 전체 구조에 반영되는 점이 특징이다. 베토벤이 쓴 ‘열정 소나타’의 네 음 모티브나 바이올린 협주곡 개시부에 나오는 네 박의 북을 주제처럼 처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구축한 구조는 귀로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모차르트의 40번 교향곡의 첫 악장을 들으면, 교향곡 형식을 모르는 이도 재현부가 시작되기 바로 몇 마디 앞에서 전체 주제가 원래의 음높이로 다시 연주되리라는 것을 예감할 수 있다.

고전파 3인방은 조성의 활용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다정하고 섬세한 느낌, 고요한 분위기는 관현악법만큼이나 새로운 조성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결코 자신들이 완성한 형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틀을 뛰어넘어서 놀았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라주모프스키’ 1번은 발전부에서 기존 작곡 규범을 무시하는 일탈을 감행했다. 모차르트는 가장 불협화음이 심한 재료를 활용해 화성 간 균형을 맞춘 안정감 있는 곡을 내놨다. 그는 때로는 당대의 표준 규범을 무시하면서, 때로는 스테레오타입을 따르면서 남다른 우아함을 드러냈다.

책은 위대한 거장들의 작품 세계를 기술적으로 상세하게 분석한다. 화성악과 대위법 같은 음악 이론에 무지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함부로 넘볼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음악 역시 아는 만큼 들리는 법이다. 책장을 덮은 뒤 접하는 ‘영웅 교향곡’의 첫 악장은 예전보다 더욱 광대하게 들리고, 레오노레 서곡의 트럼펫 소리는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