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바이오팜 연구원들이 경기 성남 판교 본사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SK바이오팜
SK바이오팜 연구원들이 경기 성남 판교 본사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SK바이오팜
메신저리보핵산(mRNA)에 이어 마이크로리보핵산(miRNA)이 새로운 치료 접근법(모달리티)으로 최근 부각되고 있다. miRNA를 통해 특정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하거나 활성화하는 기전으로 신(新) 치료법을 제시할 것이란 기대다.

7일 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팜은 지난달 miRNA를 표적하는 뇌전증 치료제를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로스비보 테라퓨틱스는 지난해 노보노디스크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협력을 논의한 데 이어, 작년 12월에는 LG화학과 대사질환 치료제 공동연구 기밀유지협약(CDA)을 체결했다. miRNA 치료제와 관련한 것이다.

miRNA는 약 22개 뉴클레오타이드(핵산을 이루는 단위체)로 구성된 작은 RNA 분자다. 유전정보를 단백질로 변환하는 mRNA와 결합해 특정 단백질의 생성을 억제한다.

질병 단백질 생성 막는 miRNA

miRNA를 만드는 유전자는 세포의 핵에 이미 포함돼 있다. 이 유전자는 효소에 의해 전사(DNA를 RNA로 합성하는 과정)돼 단일가닥 ‘전구체 miRNA(pri-miRNA)’가 된다. 전구체 miRNA를 통해 만들어진 miRNA는 단백질 생성을 조절하는 단백질 ‘AGO2’와 결합해 표적가닥과 운송가닥으로 분리된다.

이 중 표적가닥이 AGO2 및 일부 추가 단백질과 상호작용해 'RISC'(RNA 유도 침묵 복합체)를 만든다. 이 RISC가 염기서열 짝을 이루는 특정 mRNA를 찾아서 결합해, mRNA의 단백질 생성을 제어하는 것이다.

miRNA 치료제는 질병 유발 단백질이 생성되기 전 단계를 공략한다.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론적으로 질병 단백질 mRNA의 염기서열만 알고 있다면 대응하는 miRNA를 만들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존 기술로 치료가 불가능했던 질환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기존 저분자화합물이나 항체치료제는 이와 결합할 수 있는 표적 단백질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밝혀진 질병 유발 단백질 중 약물로 표적이 가능한 것은 10~15%에 불과하다.

miRNA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건 1998년이다. RNA간섭(RNAi) 현상의 발견을 통해서다. RNAi란 RNA의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것이다. miRNA와 짧은간섭리보핵산(siRNA)이 바로 RNAi 현상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처음으로 RNAi 기반 약물인 앨나일람 파마슈티컬스의 ‘온파트로’(성분명 파티시란)를 승인하면서 RNAi 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이 새롭게 제기됐다.

miRNA는 siRNA와 차별화된다. siRNA는 mRNA와 염기서열이 정확히 일치해야 작용하는 데 반해 miRNA는 일부만 일치해도 mRNA의 단백질 생성을 억제한다.

이같은 miRNA의 잠재력에 관련 논문의 발표도 급증했다. 미국 국립의학도서관 논문 검색엔진 ‘펍메드’에 따르면, 세계 miRNA 치료법 관련 논문은 1971~2000년 3건에서 2016년~2021년 7월 기준 2만2932건으로 늘었다.

국내 기업도 miRNA 치료제 개발 박차

국내에서도 miRNA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시도가 전개 중이다. 넥스턴바이오의 미국 자회사 로스비보는 miRNA 기반 당뇨 및 대사질환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이 항당뇨성 miRNA 치료제 후보물질(RSVI-301)을 인체에 주입하면 ‘KLF11’ 단백질 생성이 억제된다. KLF11은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베타세포의 성장을 막고 세포자멸사를 유발한다. KLF11를 억제해 베타세포의 사멸을 막고 재생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SK바이오팜은 지난달 국내 바이오벤처인 바이오오케스트라와 차세대 뇌전증 치료제의 공동 연구개발 협약을 맺었다. 뇌세포 내 불순물을 제거하는 단백질의 생성을 막는 miRNA 표적 약물을 개발할 계획이다. 바이오오케스트라가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SK바이오팜이 전임상을 담당한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BMD-001’도 개발 중이다. 회사가 주목하는 miRNA는 ‘miRNA-485-3p’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뇌조직에서 공통적으로 miRNA-485-3p의 발현률이 높은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miRNA-485-3p가 과발현되면 뇌세포의 정상적 기능에 필요한 단백질이 감소한다는 설명이다.

바이오오케스트라는 이 miRNA와 결합하는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약물을 개발했다. 이를 회사의 뇌 특이적 약물전달시스템(BDDS)을 통해 뇌에 전달, 뇌 면역세포를 정상화시킨다는 구상이다.

회사 측은 “아밀로이드베타나 타우 단백질이 쌓여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을 시점에는 이미 뇌 세포의 사멸이 진행되는데, 이 시점에서 병리 단백질을 제거해도 근본적인 치료는 어렵다“며 “바이오오케스트라는 miRNA를 표적해 병리 단백질 생성 환경을 차단하고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근본적 치료를 가능케 한다”고 설명했다.

miRNA를 진단 생체표지자(바이오마커)로 활용하는 기업도 있다. 암종이나 질환별로 나타나는 miRNA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miRNA는 혈액 및 소변, 타액 등 체액에서 검출 가능해 액체생검에 쓰일 수 있다.

클리노믹스는 위암 조기진단 miRNA 바이오마커를 발굴해 암 진단제품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파미르테라퓨틱스는 작년 12월 열린 한 행사에서 연구자 주도 임상을 통해 파킨슨병 진단 miRNA 바이오마커의 유효성을 입증했다고 발표했다.

이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