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일본에서 아파트 가격 급등세가 이어지고 있다.

1억엔(약 10억5천만원)을 넘는 신축 아파트 분양이 잇따르면서 '억션'(억엔대 아파트<맨션>라는 뜻)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24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수도권 신축 아파트 평균 가격이 지난 2000년 무렵의 버블(거품경제) 정점기 수준을 웃돌았다.

도쿄도(都) 주오(中央)구에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로 지어진 '하루미 플래그'의 경우 평균 분양가가 70㎡ 기준 6천만엔(약 6억3천만원) 전후였는데, 작년 11월 매물로 나온 631가구가 당일 모두 분양됐다.

평균 경쟁률은 8.7대 1로, 2019년 7월 먼저 분양된 물량의 평균 경쟁률(2.6대 1)과 비교해 3.4배로 치솟았다.

최고 경쟁률은 111대 1에 달했다.

일본 부동산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1~11월 분양된 수도권 신축 아파트 평균값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5% 비싼 6천476만엔(약 6억8천만원)이었다.

도쿄 도심으로 분류되는 23구(區)로 국한하면 8천300만엔(약 8억7천만원)을 넘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일본 아파트값 고공행진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지방 주요 도시와 구축 아파트로 확산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부동산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오사카(大阪)시에서 분양된 최고가 10억8천만엔(약 113억2천만원), 평균가 1억5천만엔(약 15억7천만원)대의 49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 물량도 모두 팔리고, 후쿠오카(福岡)시의 신축 아파트 판매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등 가격이 높을수록 잘 팔린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기존 아파트값도 올라 도쿄만(灣) 지역의 오래된 고층아파트 가격이 2019년 12월 이후 2년 동안 평균 20% 뛰었다.

일부 지역에선 기존 아파트 매매가가 분양가를 웃도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일본 아파트값 고공행진
1990년대 이후 거품경제가 붕괴하면서 오랜 기간 부동산 시장 침체를 겪은 일본에서 아파트값이 급등세를 이어가는 주된 배경으로는 왕성한 수요가 꼽히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금융기관에서 주택구매 자금을 빌리기가 쉬워지면서 소득이 비교적 높은 맞벌이 부부들이 대출을 일으켜 주택을 매입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동산 대기업들은 맞벌이 부부가 모두 정규직인 이른바 '파워 커플' 가운데 가구당 연간 수입이 1천400만엔(약 1억4천700만원)을 넘는 고소득층에 분양 마케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주택 구매 수요가 늘었지만 선호되는 신축 아파트 공급물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수도권 신축 아파트 공급물량은 3만2천500가구 정도로, 지난 2000년 정점기 무렵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요미우리신문은 아파트값 급등으로 연간 수입 600만~800만엔대 가구가 도쿄 23구에서 아파트를 사는 계획을 포기하고 교외 지역 아파트나 소형 단독주택 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