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환경·문화·공동체 파괴, 청정과 공존 미래비전 담아야"
JDC "사람·자연, 기술·산업 융합 통한 국제자유도시 성장 도모"

25일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을 공포한 지 만 20년이 됐다.

'사람과 상품,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등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가 출범한 후 이제 성년이 된 셈이다.

하지만 도민 삶의 질 향상과 동떨어진 대형 개발 위주의 사업과 부동산 가격 급등 등으로 인한 문제가 곳곳에서 노출됐다.

전환점에 선 제주국제자유도시를 살펴본다.

◇ 난개발·부동산 가격 폭등 폐해
제주국제자유도시 특별법(현행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2002년 1월 26일 공포되자 제주도는 같은 해 4월 국제자유도시 출범을 선언했다.

국토교통부는 제주를 국제자유도시로 개발하기 위한 정책을 총괄하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산하 공기업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를 설립했다.

JDC는 초기 국제자유도시를 견인하는 기본 인프라로 7대 선도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06년 12월 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 관광, 교육, 의료, 청정 1차산업에 첨단산업을 더한 4+1 핵심산업 육성으로 수정되자 핵심 및 전략 프로젝트를 변경했다.

핵심 프로젝트는 첨단과학기술단지, 휴양형주거단지, 신화역사공원, 헬스케어타운, 서귀포미항, 외국교육기관 제주캠퍼스타운(영어교육도시)이며 전략 프로젝트는 쇼핑아웃렛, 생태공원, 제2첨단과학기술단지 등의 사업이다.

이 중 휴양형 주거단지 개발은 무리한 난개발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JDC는 2005년 11월 예래 휴양형 주거단지 조성사업에 대한 도시계획시설시행자 지정 및 실시계획 인가를 받았다.

이어 2007년 10월부터 논과 밭을 강제 수용하고 도로와 상하수도, 전기 공사 등 기반시설 공사를 시작했다.

JDC는 그다음 해인 2008년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과 합작법인인 버자야제주리조트를 설립했다.

버자야제주리조트는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곶자왈 빌리지 주거단지 공사를 시작했고, 숙박용 분양형 건축물들이 지어졌다.

하지만 일부 토지 소유주들이 토지 강제 수용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토지수용 재결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결국 2015년 대법원은 '사업 인가 처분 하자가 명백하다'며 토지 소유주의 손을 들어주고, 사업 무효를 판결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상 유원지로 지정된 용지에 분양형 숙박시설을 짓도록 허가한 게 화근이었다.

유원지는 스포츠시설, 오락 시설 등을 짓고 일반인에게 자유롭게 개방하게 된 곳이지만 대법원은 유원지 부지에 폐쇄적이고 분양 등을 통한 영리 추구가 주요 목적인 숙박시설을 허가한 것이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은 결국 소송을 통해 JDC로부터 손해배상금 명목으로 1천250억원을 받고 지난해 제주를 떠났다.

또 신화역사공원과 헬스케어타운 사업은 각각 중국계 기업을 유치해 추진했으나 애초 계획한 의도와 달리 숙박시설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쇼핑아웃렛 사업은 지역 상권의 반대로 시작도 못 해보고 없던 일로 마무리됐다.

JDC는 첨단과학기술단지와 영어교육도시 조성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주변 부동산 개발 및 곶자왈 파괴 논란을 피해 가지 못했다.

실제로 제주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 주최로 2007년 열린 '환경정책-제주도민 100인 원탁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중산간 난개발 저지 및 복원과 부동산 가격 상승을 가장 시급히 해소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제주영어교육도시가 들어선 서귀포시 대정읍과 안덕면 산간 지역 주택이 현재 5억원 이상에 거래되며 개발 전과 비교해 부동산 가격이 100배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 평화·청정·공존의 미래 담은 새 비전 필요
2011년 수립된 제2차 종합계획(2013∼2021년)에서도 중국 자본 공략을 위한 복합리조트 조성 등의 계획이 세워졌으나 난개발 논란, 급격한 인구 유입에 따른 교통난, 상하수도 문제 등 기초 인프라 부족에 따른 부작용 우려가 제기됐다.

이후 2015년 제주 100년 미래비전의 핵심 가치로 '청정과 공존'이 채택되며 제2차 종합계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7년 3월 제2차 종합계획 수정 계획을 통해 환경자원 총량 관리시스템, 전기자동차 특구 조성, 제2첨단과학기술단지 등의 추진되고 있다.

이어 지난해 연말 제3차 종합계획(2022∼2031년)이 수립돼 30일 확정 고시됐다.

이번에는 ▲ 안전하고 편안한 삶터, 행복제주 ▲ 지속 가능한 제주다움, 청정제주 ▲ 활력 있고 상생하는 경제, 혁신제주 ▲ 세계와 교류 협력하는 글로벌 제주 등 4대 목표를 세웠다.

스마트 혁신 도시 등 18개 핵심사업도 제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과 보전의 균형을 찾기 위해 '청정과 공존'이라는 핵심 가치를 추가로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역 언론사인 '뉴제주일보'가 창간 76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도의원 설문조사에서 33%의 도의원이 제주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개발 및 보전 균형 정립'이라고 답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아예 국제자유도시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도내 37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제자유도시 폐기와 제주 사회 대전환을 위한 연대회의'는 지난해 6월 출범 기자회견을 통해 "도민 삶을 담보로 한 제주국제자유도시 실험은 실패했다"며 국제자유도시 비전 폐기를 촉구했다.

이 단체는 "관광객은 증가했으나 노동자의 지갑은 풍요 속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개발을 위한 규제 완화로 농지·초지·임야는 무분별하게 개발되고 투기 대상이 돼버렸고 1차산업 비중이 하락하면서 농어민 고통이 가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도민의 삶의 질이 하락하고 자연환경이 파괴돼도 중앙정부와 제주도, 정치권은 지난 20년 국제자유도시 개발 시대를 성찰하지 않고 오히려 제2공항 건설과 제3차 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을 강행하고 있다"며 "근본적 문제 해결은 국제자유도시 비전 폐기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단체는 "개발 중심, 규제 완화 중심인 현재의 제주특별법 전면 개정 운동을 전개하겠다"며 "도민 의견을 수렴해 분야별 주요 과제를 선정하고 대안을 모색해 도민 바람이 담긴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사무처장은 "국제자유도시 등 신자유주의를 제주의 미래 비전으로 내걸기는 이제 어렵다.

국제자유도시 비전을 폐기하고 청정과 공존을 위한 미래 가치를 담는 새로운 비전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국제자유도시 비전은 소득 불균형 등 소득 분배에 있어 한계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환경과 문화, 공동체를 파괴하고 훼손해 왔다"며"도민 사회는 국제자유도시 추진을 위한 행정의 개발 중심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청정과 평화, 공존의 미래 가치를 제시하고 도민사회에 공감대를 얻는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며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이런 가치들을 담은 정책들이 공론화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반면 2019년 3월부터 지난 23일까지 JDC를 이끌었던 문대림 전 이사장은 제주국제자유도시 비전 폐기보다는 전면 수정에 힘을 보탰다.

문 전 이사장은 "지금까지가 JDC의 1기라면, 앞으로의 2기는 제주가 국제적 경쟁력 갖추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JDC 스스로 기획하고 수립해서 추진해 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JDC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과 자연, 기술과 산업의 융합을 통해 국제자유도시의 지속 성장을 도모하는 통합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