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정부가 한국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무역확장법 232조 규제조치에 대해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2개월이 흘렀지만 아직 협상 절차는 시작도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럽연합(EU)이 지난해 10월 미국으로부터 무역확장법 232조에 의한 관세를 철폐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일본도 공식 재협상에 착수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협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으로부터 기다려달라는 대답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이 자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한 수입품에 대해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한 법이다. 1962년 제정돼 1979년 이란산 원유와 1982년 리비아산 원유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의 근거 조항으로 쓰인 이후 사실상 사문화됐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무역확장법 232조를 통해 EU와 일본, 중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한국은 철강에 관세를 부과받는 대신 연간 대미 철강 수출량을 2015~2017년 3년 평균 수출량의 70% 이내로 제한하는 쿼터제를 적용받기로 합의했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EU산 철강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기로 하면서 한국 철강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한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받아 수출이 제한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EU산 철강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과 미국 정부가 지난해 11월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을 두고 협상을 재개하기로 하면서 국내 철강 업계의 위기감은 고조됐다.

정부는 EU와 미국이 합의한 이후 미국에 재협상을 공식 요청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작년 11월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직접 만난 이후 "한국과도 재협상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전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문 장관 역시 작년 12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과 유선 회담을 하고 재협상을 촉구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정부가 미국에 재협상을 공식 요구했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밝힌 이후 2개월이 흘렀는데도 재협상이 이뤄지지 못한 이유에 대해 문 장관은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과의 철강 관세 합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세까지 부과받으면서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를 받는 일본이 한국보다 먼저 미국에 재협상을 촉구했다는 게 문 장관의 설명이다. 문 장관은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 상무장관을 만나 처음 관련 문제제기를 했다"면서도 "미국은 일본과의 협상과 함께 자국 철강 회사들과의 사전 협의도 먼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문 장관은 "한국 정부는 국내 기업의 입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미국 측에 전하는 노력을 하고 있고, 미국 측도 잘 알고 있다"며 "한국이 경쟁국과 비교해 뒤처지는 통상 환경에 놓이지 않도록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협상 개시를 이끌어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