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장내세균과 뇌 기능
대변 또는 그 안에 존재하는 세균을 이용한 치료 약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심한 식중독, 설사 치료에 분즙(糞汁)을 사용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의사 알프레트 니슬은 이질에 저항력을 보이는 병사로부터 추출한 대장균이 이질을 막아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균은 ‘대장균-니슬1917’로 명명돼 현재도 유익균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근래에 장내세균과 숙주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장내세균이 비만, 당뇨병, 간 질환, 심혈관계 및 뇌 질환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장내세균을 조절해 질병을 치료하려는 오랜 노력이 차츰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비만 환자의 경우 장내세균 종류의 다양성이 감소하는데, 체중이 줄면 다양성이 일반인과 비슷해진다. 장내세균과 비만의 상관관계는 동물실험으로 잘 정립됐다. 비만한 생쥐는 장내세균의 분포가 변한다. 피르미큐테스(Firmicutes) 종류는 증가하고 박테로이디테스(Bacteroidetes) 종류는 감소한다. 장내세균은 숙주의 장 세포가 소화하지 못하는 음식 성분을 분해해 영양분을 이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피르미큐테스는 이 능력이 월등하다. 무균 생쥐의 장에 비만 생쥐의 장내세균을 넣어 주면 날씬한 생쥐의 장내세균을 넣어준 그룹에 비해 체지방이 증가하고 비만이 된다. 비만한 사람이 ‘맹물만 먹어도 살찐다’며 다이어트 어려움을 토로할 때 이해해줘야 하는 이유다. 요컨대 환경으로부터 영양분을 취해 살아가는 일이 소화기관 세포만의 일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세균들과의 협력 사업임을 알 수 있다. ‘나 혼자 산다’가 아닌 것이다.

'비만 어머니' 자녀 자폐 확률 높아

[신희섭의 뇌가 있는 풍경] 장내세균과 뇌 기능
비만이 일으키는 장내세균의 변화는 자폐증과도 직접 연관된다. 복통 등 소화기 장애는 자폐증의 흔한 증상이다. 비만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이가 자폐증을 보일 확률이 높다는 역학 연구가 있다. 임신한 생쥐에게 지방 성분이 높은 먹이를 줘 비만을 유도하면, 태어난 새끼 생쥐들이 사회성 결핍 등 자폐 증상과 함께 뇌에서 자폐증과 관련된 신경학적인 변화를 보인다. 확인 결과, 새끼 생쥐의 장내세포 중 특정 유산균 균주가 감소해 있었다. 새끼 생쥐의 장에 이 유산균 균주를 투여했더니 자폐 증상이 호전되고 뇌의 병적인 변화도 사라졌다. 태어날 때부터 무균 상태로 사육한 무균 생쥐는 스트레스에 약하고 자폐 증상을 보이는데, 보통의 장내세균을 투여하면 정상으로 회복된다. 즉 뇌 기능의 발달에 장내 세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동물실험 결과에 착안해 장내세균 치환법을 이용한 자폐증 치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장-세균-뇌' 흔들리면 질환 발생

나아가 장내세균은 성향 형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관계망이 넓은 사람일수록 장내세균의 종류가 다양하며, 불안증이나 스트레스 장애를 겪으면 장내세균의 다양성이 줄어들고 패턴도 바뀐다는 보고가 있다. 심지어 장내세균 분포가 사람의 성격과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 행동 성향 형성에 장내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의 폭거 아래 전전긍긍한 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포들을 파괴해 염증을 일으키고 사망에까지 이르게 하는 등 엄청난 영향력을 과시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생명체가 아니다.

반면 세균은 한 개체로서 살아가는 생명체다. 동식물의 세포(진핵세포)와 달리 세균은 핵이 분리돼 있지 않은 원핵세포다. 체중 70㎏, 신장 170㎝, 20대 남성의 몸은 약 30조 개의 진핵세포로 구성돼 있다. 이들을 단세포로 분리해 적절한 조건을 제공해주면 아메바와 마찬가지로 잘 살아간다. ‘생명체의 단위는 세포’인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몸에는 30조 개의 자체 세포에 더해 약 38조 개의 원핵세포, 즉 장내세균이 함께 살고 있다. 손님이 주인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장-세균-뇌의 연결축이 정상적인 뇌 발달과 기능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그 축이 흔들리면 어떻게 질환 상태를 초래하는지는 아직 과학적 규명이 필요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30조 개의 진핵세포와 그에 공생하고 있는 38조 개의 원핵세포가 한 ‘몸’이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기초과학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에스엘바이젠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