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광기·독재…中 문화대혁명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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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중국-문화대반란 1964~1976
송재윤 지음
까치글방
536쪽│2만2000원
송재윤 지음
까치글방
536쪽│2만2000원
오늘도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을 내려다본다. 톈안먼광장의 대형 초상화에서 느껴지는 그의 시선은 서늘하다. 14억 중국인도 매일 그와 마주한다. 1위안부터 100위안까지 6종의 지폐 앞면을 마오의 초상이 차지하고 있어서다. 1949년부터 1976년까지 27년 동안 그의 철권통치 아래 70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수없이 많은 이가 고초를 겪었던 점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오가 대접받는 모습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슬픈 중국-문화대반란 1964~1976》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복기한 책이다.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3부작으로 집필 중인 ‘슬픈 중국’ 시리즈의 둘째 권이다. 책의 부제는 흔히 통용되는 문화대혁명 대신 문화대반란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대중 광기의 집합체이자 유례없는 자기 파괴, 역사의 후퇴를 감히 ‘혁명’으로 칭하는 게 어불성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쩌둥 최후의 10년을 구성하는 소위 문화대혁명은 천하대란의 시기였다. 중국 전역은 말 그대로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마오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던 혁명 영웅은 물론 수많은 죄 없는 일반인이 죽고, 다치고, 모욕받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문혁이 개시된 이듬해인 1967년에만 산업 생산량은 14%나 감소했다. 식량 배급이 줄고 생필품이 부족해져 민생은 피폐해지고, 민심은 강퍅해졌다.
반면 10년 대동란을 일으킨 마오는 죽는 날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혁명으로 미화된 정치 운동의 실상은 대기근으로 끝난 대약진운동(1958~1962)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마오가 기획한 추잡한 권력 다툼에 지나지 않았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동원한 수단은 비열했다. 중국의 정치는 대중 동원과 집단 감시, 동료 고발, 자백 강요, 인민재판, 즉결처형, 사상 개조의 연속이었다. 인신 구속과 강제 구금, 고문과 취조 같은 비인간적 수단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정치 투쟁의 광기는 마오를 제외한 모든 이를 덮쳤다. 저명한 역사학자 오함에서 시작해 국가 수반이던 주석 류사오치, 국방장관 린뱌오까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우언라이는 절대권력자의 눈치만 봤고, 주자파로 몰린 덩샤오핑은 숨을 죽여야만 했다. 장칭, 야오원위안, 왕훙원, 장춘차오 등 ‘사인방’도 광기의 물결에 올라탔다가 그 물결에 삼킴을 당했다.
마오가 전가의 보도처럼 쓴 수단은 편 가르기였다. 사회를 혁명 투사와 인민의 적으로 나누고 그 균열의 틈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명분을 미끼로 던지고 이를 덥석 문 비판적인 인사들을 추려 공격의 타깃으로 삼았다. 혁명과 반혁명, 무산자와 자산계급, 민족과 반민족, 친일과 반일, 수정주의와 반수정주의라는 이분법과 흑백논리로 사람들을 나눴다.
선전·선동과 집단최면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대규모 군중 집회는 정책을 선전하고 합리화하는 장소였다. 집회에 나서지 않는 인민은 적으로 몰려 처형됐다. 군중 집회로 집체적 정신 무장이 이뤄졌고 사상이 개조됐다.
마오의 손발이 된 것은 나이 어린 홍위병들이었다. 밤낮으로 《마오쩌둥 어록》을 읽고, 혁명 투사의 완장을 찬 청소년들은 집단 광기에 휩싸였다. “혁명은 폭동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라!”는 마오의 메시지는 홍위병의 내면에 잠복한 폭력성을 분출시켰다. 홍위병들은 과거의 사소한 언행을 문제 삼아 대학 총장과 교수들을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난하이의 주석 관저에 침입해 류사오치 부부를 끌어낸 뒤 린치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전역에서 곤봉으로 때려죽이고, 작두로 썰어 죽이고, 밧줄로 매달아 죽이는 광란의 대학살이 이어졌다.
득세한 것은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언론계와 문화, 교육, 과학계엔 어용 인사만 득실거렸다. 무비판의 궤도를 달린 것은 독재의 폭주였다. 그리고 이런 광란의 질주는 1976년 9월 9일 마오가 사망하고서야 멈췄다.
문혁은 결코 50년 전에 끝난 과거사가 아니다. 형태를 바꿔, 더 정교하게 진행 중이다. 시진핑 정부는 첨단 디지털 장비를 총동원해서 인민을 감시하고 있고, 중국의 10대는 날마다 마오 신화를 배우고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이런 때, 톈안먼의 마오 초상화는 섬뜩한 경고로 다가온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언제든 인간 내면에 뿌려진 악의 씨앗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슬픈 중국-문화대반란 1964~1976》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진행된 문화대혁명의 참상을 복기한 책이다. 캐나다 맥매스터대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저자가 3부작으로 집필 중인 ‘슬픈 중국’ 시리즈의 둘째 권이다. 책의 부제는 흔히 통용되는 문화대혁명 대신 문화대반란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대중 광기의 집합체이자 유례없는 자기 파괴, 역사의 후퇴를 감히 ‘혁명’으로 칭하는 게 어불성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오쩌둥 최후의 10년을 구성하는 소위 문화대혁명은 천하대란의 시기였다. 중국 전역은 말 그대로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마오와 함께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던 혁명 영웅은 물론 수많은 죄 없는 일반인이 죽고, 다치고, 모욕받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문혁이 개시된 이듬해인 1967년에만 산업 생산량은 14%나 감소했다. 식량 배급이 줄고 생필품이 부족해져 민생은 피폐해지고, 민심은 강퍅해졌다.
반면 10년 대동란을 일으킨 마오는 죽는 날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혁명으로 미화된 정치 운동의 실상은 대기근으로 끝난 대약진운동(1958~1962)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마오가 기획한 추잡한 권력 다툼에 지나지 않았다. 독재자가 권력을 유지하려고 동원한 수단은 비열했다. 중국의 정치는 대중 동원과 집단 감시, 동료 고발, 자백 강요, 인민재판, 즉결처형, 사상 개조의 연속이었다. 인신 구속과 강제 구금, 고문과 취조 같은 비인간적 수단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정치 투쟁의 광기는 마오를 제외한 모든 이를 덮쳤다. 저명한 역사학자 오함에서 시작해 국가 수반이던 주석 류사오치, 국방장관 린뱌오까지 수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저우언라이는 절대권력자의 눈치만 봤고, 주자파로 몰린 덩샤오핑은 숨을 죽여야만 했다. 장칭, 야오원위안, 왕훙원, 장춘차오 등 ‘사인방’도 광기의 물결에 올라탔다가 그 물결에 삼킴을 당했다.
마오가 전가의 보도처럼 쓴 수단은 편 가르기였다. 사회를 혁명 투사와 인민의 적으로 나누고 그 균열의 틈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란 명분을 미끼로 던지고 이를 덥석 문 비판적인 인사들을 추려 공격의 타깃으로 삼았다. 혁명과 반혁명, 무산자와 자산계급, 민족과 반민족, 친일과 반일, 수정주의와 반수정주의라는 이분법과 흑백논리로 사람들을 나눴다.
선전·선동과 집단최면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했다. 대규모 군중 집회는 정책을 선전하고 합리화하는 장소였다. 집회에 나서지 않는 인민은 적으로 몰려 처형됐다. 군중 집회로 집체적 정신 무장이 이뤄졌고 사상이 개조됐다.
마오의 손발이 된 것은 나이 어린 홍위병들이었다. 밤낮으로 《마오쩌둥 어록》을 읽고, 혁명 투사의 완장을 찬 청소년들은 집단 광기에 휩싸였다. “혁명은 폭동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라!”는 마오의 메시지는 홍위병의 내면에 잠복한 폭력성을 분출시켰다. 홍위병들은 과거의 사소한 언행을 문제 삼아 대학 총장과 교수들을 공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난하이의 주석 관저에 침입해 류사오치 부부를 끌어낸 뒤 린치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전역에서 곤봉으로 때려죽이고, 작두로 썰어 죽이고, 밧줄로 매달아 죽이는 광란의 대학살이 이어졌다.
득세한 것은 기회주의자들이었다. 언론계와 문화, 교육, 과학계엔 어용 인사만 득실거렸다. 무비판의 궤도를 달린 것은 독재의 폭주였다. 그리고 이런 광란의 질주는 1976년 9월 9일 마오가 사망하고서야 멈췄다.
문혁은 결코 50년 전에 끝난 과거사가 아니다. 형태를 바꿔, 더 정교하게 진행 중이다. 시진핑 정부는 첨단 디지털 장비를 총동원해서 인민을 감시하고 있고, 중국의 10대는 날마다 마오 신화를 배우고 애국주의로 무장하고 있다. 이런 때, 톈안먼의 마오 초상화는 섬뜩한 경고로 다가온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언제든 인간 내면에 뿌려진 악의 씨앗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