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삼매경 유령, 축제에 빠진 동물···기발한 상상력의 생상스[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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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2009년 은반 위를 화려하게 수놓던 '피겨 여왕'의 모습 말입니다. 당시 밴쿠버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연아 선수 얘기인데요.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완벽한 테크닉에 전 세계 사람들이 매료됐었죠.
이때 사용됐던 배경 음악이 생각나시나요. 프랑스 출신의 음악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가 만든 '죽음의 무도'입니다. 이 곡은 피겨 여왕의 아름다운 동작과 함께 깊은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이 작품은 유령들의 축제를 그린 시인 앙리 카자리스의 시를 재해석한 겁니다. 시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지그, 지그, 지그. 해골들은 껑충껑충 뛰어다니고, 춤추는 뼈들이 부딪치며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1년에 단 하루, 유령들이 세상에 나와 축제를 열고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죠. 생상스는 바이올린의 불협화음을 통해 이들의 움직임을 재밌게 표현하며, 강렬하고도 위트 있는 음악을 선사했습니다.
'죽음의 무도'뿐 아니라 생상스는 독창적인 음악을 많이 선보였는데요. '동물의 사육제'가 대표적입니다. 이 작품은 매년 2월 가톨릭 문화권에서 열리는 축제인 사육제를 동물들이 개최한다는 기발한 상상에서 출발했습니다. 총 14개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엔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등이 등장하죠. 그중에서도 13악장의 첼로 독주곡 '백조'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풍부한 상상력과 영감, 여기에 탁월한 음악적 재능까지 갖추고 있었던 생상스. 그는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듯이 운명처럼 작품을 쓴다"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사과처럼 탐스럽고 싱그런 열매가 가득한 생상스의 음악 세계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생상스는 '프랑스의 모차르트'라고 불릴 정도의 신동이었습니다. 3살 때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죠. 10살 땐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고, 독주회도 열었습니다.
이 독주회에선 다른 공연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연주가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 10여 곡을 열심히 연주한 후 앙코르를 받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면서 관객들에게 32개에 달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아무 작품이나 하나를 골라주면 악보 없이 연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곡들을 전부 외우고 완벽하게 익히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10살에 이미 이런 재능과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기만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생상스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난 후 두 달 만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평생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됐습니다. 자신도 아버지처럼 폐 질환으로 죽음에 이를까 늘 걱정했던 거죠. 이 때문에 그는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여행을 자주 떠나곤 했습니다.
그렇게 생상스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음에도 순탄하게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고모 덕분이었죠. 고모는 꽤 부유한 편이었는데요. 생상스와 그의 어머니를 도와줬을 뿐 아니라, 생상스의 일찌감치 재능을 알아보고 음악 교육도 시켜줬습니다.
그는 워낙 특출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던 터라 명문 파리 국립음악원에도 쉽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뛰어난 예술가들이 총집합한 이곳에서도 그는 피아노, 오르간, 작곡 등에서 두루 재능을 드러냈죠. 특히 오르간으로는 음악원 전체에서 1등을 차지할 만큼 탁월했습니다. 현란한 기교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가 생상스에 대해 "세계 최고의 오르간 연주자"라고 극찬할 정도였습니다.
이후에도 생상스는 승승장구했습니다. 음악원을 졸업한 후엔 당시 오르간 연주자로선 최고의 영예였던 성 마들렌 성당의 오르간 연주를 맡게 됐죠. 25세엔 니데르메예르 음악 학교의 피아노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이토록 인정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는 '프랑스의 모차르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빠르게 성장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4년 만에 돌연 음악 학교에서 나왔습니다. 생상스 자신의 꿈을 위해서였죠. 그는 연주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지만, 작곡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파리 국립음악원 재학 당시에도 파리음악협회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작곡에 재능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과감히 학교를 그만두고 작곡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쓴 음악엔 거장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파블로 사라사테에게 헌정됐는데요. 사라사테는 작품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이 곡은 오늘날까지도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좋아하고 즐겨 연주하는 작품이기도 하죠.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죽음의 무도' 등 생상스의 작품들은 참신하게 다가오면서도 친근하게 느껴지는데요. 그가 무조건 고전 음악을 따라 하지도, 파격만을 내세우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적절히 조합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냈죠.
그의 다양한 호기심과 재능이 결합돼 음악적 상상력으로 구현되기도 했습니다. 생상스는 평소 별 보기를 좋아했는데요.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겁니다. 심지어 그는 고고학, 식물학도 공부했습니다.
'죽음의 무도'가 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도 알 수 있듯, 시를 포함해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났습니다. '환상 교향곡' 등을 썼던 음악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생상스가 못하는 걸 찾는 게 더 빠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생상스는 여행도 무척 좋아했는데요. 27개국을 179번에 걸쳐 여행했을 정도입니다. 그는 여행지에서 얻은 영감으로 재밌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동물의 사육제'도 오스트리아의 한 시골 마을에서 열리는 사육제를 보고 쓴 곡입니다. 이밖에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아프리카' 등도 만들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것도 아프리카 알제리에서였습니다. 아버지와 비슷한 폐 질환인 폐렴 때문이었죠. 평생 두려워했던 일이 실제 일어났다니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음의 무도'에서 죽음을 무겁지만은 않은, 삶의 새로운 연장선상으로 표현하며 스스로 트라우마를 치유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하늘나라에 있는 생상스도 오늘날까지 '죽음의 무도'가 사랑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즐거운 축제를 벌이고 있지 않을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